권범철 화백 kartoon@hani.co.kr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각) 북한을 향해 “(계속 미국을 위협한다면) 세계가 보지 못했던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불과 몇 시간 뒤엔 북한군 총참모부가 “‘화성-12’형으로 괌 주변 포위사격 작전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며 미국의 태평양 군사기지가 있는 괌 폭격 가능성을 언급했다. 북한은 또 “미국의 선제타격 기도가 드러나는 즉시 서울을 포함한 괴뢰 1, 3 야전군 지역 모든 대상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며 전면전 가능성까지 덧붙였다. 트럼프식 ‘북한 불바다(fire and fury)’에 ‘괌·서울 불바다’로 맞받은 셈이다. 비록 말의 공세이긴 하지만, 마주 달리는 자동차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실제로 북한을 타격하겠다는 뜻이라기보다, 북한에 대한 경고 및 중국·러시아에 대한 대북 제재 이행 압박,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 유권자들을 의식한 국내정치용인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런 의도와 달리 이런 ‘말폭탄’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보단 동북아 위기를 고조시켜 매우 불확실한 정세를 만들 뿐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사설에서 트럼프의 말을 “경솔하고 불필요한 발언”이라 규정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 대통령의 말이 어쩌다 북한 지도자 수준으로 떨어졌느냐”고 한탄했다.
도발적 언행으로 위기를 키운 책임의 출발은 북한 쪽에 있다. 잇단 핵·장거리미사일 실험을 하고도 자제는커녕 ‘남한 불바다’를 입에 담는 북한 정권의 무모함은 고삐 풀린 말을 연상시킬 정도다. 물론, 미국과 북한의 ‘말폭탄 대결’이 곧장 물리적 군사충돌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나 김정은 둘 다 이전 지도자들에 비해 예측 불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매우 우려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레토릭이라 하더라도 발언 수위가 끝없이 올라가다 보면 자칫 작은 오해가 우발적인 충돌로 비화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북한과 미국은 강경한 말싸움으로 위기를 계속 높이기보다, 실질적으로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는 진지한 해법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우리 정부도 이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은 절대 안 된다’는 흔들릴 수 없는 목표를 다시 확인하면서, 한반도 위기를 진정시키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