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성 경찰청장(오른쪽)과 강인철 중앙경찰학교장.
최근 ‘민주화의 성지’ 페이스북 글 삭제 논란을 둘러싸고 진실공방을 벌여온 이철성 경찰청장과 강인철 중앙경찰학교장이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함께 13일 대국민 사과를 했다. 김 장관이 두 사람을 포함해 전국 경찰 지휘부와 화상회의를 하고 “불미스러운 상황이 계속되면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한 데 따른 것이다. 행안부가 외청인 경찰청의 지휘권을 갖고 있다지만 회의 소집도, 장관이 나선 사과도 모두 이례적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개혁을 앞두고 그만큼 청와대가 이번 사태를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12만 경찰 수장인 치안총감이 치안감과 지난주 내내 벌인 진실공방은 경찰 조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지난해 11월18일 주말 촛불집회를 앞두고 광주지방경찰청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민주화의 성지, 광주 시민들에게 감사드린다’는 문구와 ‘국정농단 헌정파괴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펼침막 사진을 넣어 교통통제 양해 글을 페이스북에 게재했는데, 다음날 이 글이 돌연 삭제된 게 이철성 청장 지시였느냐가 논란의 핵심이다. 이 청장은 강력 부인했지만 당시 광주경찰청장이었던 강인철 학교장은 이 청장이 통화에서 ‘민주화의 성지에서 근무하니 좋으냐’는 비아냥과 함께 게시물을 수정하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주장했다. 한편으론 뇌물 및 직권남용 혐의로 내사를 받는 강 학교장의 ‘개인 감정’에 따른 폭로라는 논란도 더해져, 수뇌부의 진흙탕 싸움이 격화됐다.
‘민주화의 성지’ 삭제 여부는 녹취 등이 남아 있지 않아 진상이 완전히 밝혀지진 않고 있다. 그러나 상부에서 불편한 심기가 전해졌다는 관계자 증언은 잇따른다. 지난해 11월은 경찰이 유연한 집회 대응 기조를 강조하면서도 촛불시위 참여자 수를 축소 발표하거나 매번 일부 구간 행진을 불허해 논란이 되던 시기다.
새 정부 들어 이 청장은 경찰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에 사과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였지만, 책임이 결여된 ‘말뿐인 사과’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시민단체가 직권남용으로 이 청장을 고발한 만큼, 검찰 수사 과정에서 진위가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또 이 청장과 강 학교장 모두 전모가 드러나면 그에 걸맞은 책임있는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게 묵묵히 땀 흘리는 수많은 경찰관의 명예를 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