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2019년을 ‘대한민국 건국 100년’이라 언급하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북한을 의식한 좌파의 주장”이라고 공격했다. 바른정당은 “국민 분열을 야기하는 행보”라 비판했다. 보수 언론도 문 대통령에게 ‘분열론자’라는 딱지를 붙이기에 바쁘다. 시도 때도 없는 색깔론도 어이없지만, 사실 호도와 적반하장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른바 ‘건국절 논란’을 촉발한 건 몇년 전 뉴라이트 계열 일부 학자들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남쪽에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15일을 ‘건국절’이라고 밀어붙이려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아예 8월15일을 ‘건국 68주년’이라 불렀다. 광복회가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라 반발했지만, 무시해버렸다. 뜬금없이 건국절을 들고나와 국민 분열과 갈등을 부추긴 건 바로 이명박·박근혜 정권이었던 셈이다.
건국절 주장의 이면에 ‘이승만 미화’가 깔려 있다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임시정부에 의해 탄핵당하고, 4·19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자는 게 그런 주장의 실체다. 그러자면 임시정부 법통을 무시하고,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했던 김구 등 대다수 독립운동가의 활동을 평가절하할 수밖에 없다. 항일독립운동과 4·19혁명에 대한 모욕이요, 국민을 얕잡아 보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보수 정권이 총력을 기울였는데도 건국절이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던 건 법적, 역사적 근거가 워낙 박약했기 때문이다. 1987년 여야 합의로 개정한 헌법 전문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분명히 명시돼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조차 취임 당시 연호를 ‘대한민국 30년’이라 불렀다. 1948년 8월15일 정부 출범 행사를 ‘건국’이 아닌 ‘정부 수립 축하식’이라 명명한 건 다름 아닌 이승만 정권이었다.
사실이 이런데도 자유한국당 등이 또다시 건국절 논란을 부추기는 속내를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8·15에서 ‘광복’의 의미를 거세하고 ‘건국’의 의미를 부각하면 가장 좋아할 이들이 누구겠는가. 일제의 주구 노릇을 했던 친일 반민족 행위자와 그들을 승계하는 세력일 것이다. 한사코 건국절을 주장하는 이들은 친일 세력의 계승자임을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걸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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