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외교부·통일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최근 정부의 북핵 대응과 관련해 상당히 강한 톤으로 실무 부서를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토론 형식의 업무보고 도중에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말은 당연히 해야 할 책무인데, 다른 나라 정상이 그런 말을 하면 전략적이라 하고 내가 하면 공조 균열이나 논란이라고 한다”는 취지로 소회를 토로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창의적 외교가 필요하다”는 뜻도 밝혔다고 한다.
문 대통령 발언은 자신의 ‘전쟁 불가론’을 “나약하다”느니 “대북 제재를 위한 국제공조에서 이탈한다”고 공격하는 국내 일부 보수층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일부 강경 보수층은 현 정부의 대북 대화와 협상론을 맹비난하면서, 막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장을 칭찬하면서 북-미 대화 가능성을 내비친 것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우리 정부가 북한과 대화하는 건 ‘국제공조 이탈’이고 미국이 북한과 대화하는 건 ‘전략적 정책 전환’이라 평가하는 건 일관성 없고 비논리적인 주장이다. 전형적인 대미 사대주의의 발로라 아니할 수 없다. 문 대통령 발언은 이런 이중적 태도에 대한 비판과 함께, 앞으로 위기 국면에서도 북한과의 대화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문 대통령이 일부 보수층의 이중적 시각을 겨냥한 듯 말했지만, 그에 책임감을 느끼고 분발해야 할 쪽은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라인이다. 업무보고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대통령 발언이) 외교 라인을 강하게 질책한다는 뜻으로 들렸다”고 말했다. 최근의 북한 핵·미사일 위기 속에서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은 능동적으로 해법을 마련하기보다, 미국이 강경·온건론을 오가는 걸 지켜보며 추종한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미국은 북한과 막후 대화를 하고 있는 듯한데, 우리는 남북 대화의 단초조차 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통일부 역시 책임을 피하긴 어렵다.
한반도 위기 관리와 북핵 해결을 위해선 북-미 대화와 남북 대화가 함께 맞물려 가는 게 바람직하고 효과적이다. 이를 위해 한-미 간에 긴밀하게 협의해서 정교한 로드맵을 만들어내는 게 외교·안보 라인의 몫일 것이다. 대통령 발언이 미국 일변도에 치우치며 트럼프 행정부를 뒤쫓아가기에 바쁜 외교·안보팀에게 각성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