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뒤 형량과 판결 내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다. 한쪽에서 형량이 적다는 불만이 제기되는 반면 다른 쪽에선 유죄 근거가 된 ‘묵시적 청탁’의 법리를 문제삼는다. 한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이른바 재벌총수 정찰제 판결이 잇따랐던 관행에 비춰, 형량에 대한 문제제기가 기우라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반면 결정적 물증이 없다며 뇌물죄 유죄 자체에 시비를 거는 주장은 여러 증거나 기존 판례에 비춰봐도 무리한 논리 전개다. 그동안 이 부회장 등 삼성 쪽에 우호적인 논조와 태도를 보여온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이 1심 판결 뒤에도 상식을 벗어난 주장을 펴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법원이 대부분의 공소사실에 유죄 판결을 했는데도 구형에 비해 이 부회장 형량이 대폭 줄어든 것은 재산국외도피액 78억원 가운데 41억원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심 재판부가 작량감경까지 하면 집행유예도 가능하다. 삼성전자 명의의 독일 계좌로 송금하는 등 당시로선 최순실씨에게 증여할 의사가 없었다는 취지이나 애초의 계좌 개설 경위를 보면 논란의 소지가 있다.
재판부가 뇌물공여를 인정하며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판단한 데 대해, 일부에선 ‘마음속에 들어가보지 않은 이상 청탁을 확인할 수 없다’는 식의 반론도 편다. 재판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삼성의 승계작업을 ‘인식’한 상태에서 유독 승마를 챙기며 정유라 지원을 요구했고, 이 부회장도 대통령의 지원을 기대하며 돈을 건넨 것이라고 봤다. 3차례의 독대는 물론 청와대 민정·정책기획수석실, 공정거래위와 국민연금 등 정부기관이 총동원되다시피 한 상황과 이를 뒷받침하는 업무수첩, 말씀자료, 외압일지, 증언 등 명백한 ‘증거’를 토대로 판단했는데도 ‘마음속 청탁’ 운운하는 것은 궤변이다.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에게 적용된 ‘포괄적 뇌물죄’ 판례와 지난 4월 ‘묵시적 청탁’ 법리에 따른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 뇌물죄 유죄 판결 등 기존 판례들로도 이 부회장 뇌물죄 법리는 충분히 뒷받침된다.
그럼에도 기존 판례와 증거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논리를 계속 전개하는 것은 언론의 상식을 한참 벗어나 삼성 쪽 변호인을 자처하는 꼴이다. 더이상 ‘재벌에 무릎 꿇은 언론’의 길을 자초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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