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업 구내식당 사업을 독식하고 있는 재벌 계열사들이 공공기관까지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공공기관 구내식당마저 대기업에 빼앗긴다면 중소업체들은 설 땅을 아예 잃게 된다. 수익성을 좇는 게 기업의 생리라고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재벌 계열사들이 공공기관 구내식당까지 손을 뻗치는 것은 올해 1월부터 규제가 풀렸기 때문이다. 2012년 재벌의 골목상권 침투가 사회문제로 불거지자 이명박 정부는 재벌의 공공기관 구내식당 운영을 금지했다. 그러나 재벌이 빠진 자리를 중소기업이 아닌 중견기업과 외국계 기업이 차지하는 부작용이 나타나자 박근혜 정부가 덜컥 규제를 풀었다. 이명박 정부가 꼼꼼한 준비 없이 규제를 했다가 부작용을 낳았다면 박근혜 정부는 대책 없이 규제를 풀어 상황을 악화시켰다. 운영상의 문제점을 보완해, 취지는 살리는 쪽으로 제도를 개선했어야 하는데 그냥 규제만 푼 것이다. 탁상행정이 아닐 수 없다.
현재 5조원대 규모인 단체급식 시장은 웰스토리(삼성), 현대그린푸드(현대백화점), 아워홈, 신세계푸드, 한화호텔앤리조트, 씨제이프레시웨이 등 6개 재벌 계열사들이 70%를 독식하고 있고, 동원홈푸드와 이씨엠디 등 중견기업이 1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남은 시장을 놓고 중소업체 4500여곳이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재벌 계열사들은 중소기업과 공정하게 경쟁하면 문제될 게 없으며 소비자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출발선이 다른 상황에서 ‘공정한 경쟁’ 운운하는 것은 억지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재벌들은 그룹 계열사 구내식당 운영 등 내부거래를 통해 확보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처음부터 경쟁이 되지 않는 구조다.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위해 재벌의 구내식당 운영은 제한하는 게 마땅하다. 전문가들은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식자재 생산과 유통사업에 주력하고 구내식당 운영은 중소기업에 맡기는 방안을 제안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거대 재벌이 단가가 4000원 선인 단체급식 사업에 뛰어드는 게 맞느냐는 의문이 든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할 대기업에 어울리는 일이 아니다. 전체 일자리의 85%를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의 성장 없이는 ‘일자리 중심 경제’도, ‘소득 주도 성장’도 모두 공허한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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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구내식당에서 직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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