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이른바 ‘엔터테인먼트 파트’(엔터팀)를 만들어 영화계 전반을 사찰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화 <변호인> 등 진보 성향 영화를 제작한 영화인들을 사찰하고 이를 근거로 제작·투자·배급 등 영화산업 전반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영화계판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철저한 진상조사와 처벌이 필요하다.
<한겨레21> 보도를 보면, 국정원 엔터팀은 국내 정보수집 업무를 총괄하는 정보보안국 소속으로 문화계 전반을 담당하는 오아무개 처장 밑에 배아무개, 이아무개씨 등이 활동했다. 정보보안국 국장은 실세로 알려졌던 추명호씨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직보했다는 의혹을 샀던 인물이다. 엔터팀은 대기업, 직배사, 영화감독 등을 만나 동향을 파악했고, 이 활동은 영화계 지원 배제 대상인 블랙리스트와 우파 성향 콘텐츠 지원 대상인 화이트리스트의 자료로 활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엔터팀은 2013년 노무현 전 대통령 일대기를 다룬 영화 <변호인>을 계기로 부쩍 활동이 잦아졌다고 한다. 영화 관계자들은 엔터팀이 <변호인> 관련 이슈를 물어오고 확인을 요구했으며 이후 압박이 노골화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박정희, 노무현, 친일 등을 소재로 한 영화는 석연찮은 이유로 정부 기금이나 투자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 엔터팀은 우익 콘텐츠 제작에도 개입했다. 한 영화감독은 엔터팀 요원에게서 “애국영화, 국뽕영화를 제작하면 국정원이 30억원 정도는 대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엔터팀 활동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활동의 밑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에는 “영화계 좌파 성향 인물 네트워크 파악 필요” “<국제시장> 투자자 구득난, 관장 기관 있어야” 등의 대목이 나온다. 국정원 엔터팀이 청와대가 영화계에 개입할 수 있는 손발 역할을 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국정원의 이런 활동은 국내 보안정보 업무와는 아무 관련없는 일로, 국가정보원법을 위반한 불법행위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국정원이 개입된 흔적은 조금씩 나왔지만 이번처럼 구체적인 활동이 드러난 경우는 처음이다. 블랙리스트 재판 과정에서 국정원 관계자들은 형사처벌 대상에도 오르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화계 전반에 대한 국정원의 불법활동 전모를 밝혀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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