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 부결을 둘러싼 책임 공방 와중에 국민의당이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12일 “이번 표결에서 민주당에서도 반대표가 나왔을 것이고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도 소신투표를 했을 것”이라며 “부결에 대한 책임론 분석이 어처구니없다”고 말했다. 인준안 부결이 국민의당 의원들의 반대 탓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당 의원 39명 중 절반 정도가 반대표를 던졌다는 건 언론의 일치된 분석이다. 호남 등의 여권 지지자들에게서 쏟아지는 비난을 모면하려는 얄팍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박지원 의원이 표결 전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등의 인사 문제에서 성의를 보이라고 여권에 요구했다고 말한 것도 사후 면피성 발언으로 읽힌다.
김 후보자 인준안 부결의 책임이 어디 있는지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발언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안 대표는 지난 11일 표결 직후 “국민의당이 20대 국회에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라며 “국민의당 의원들이 (김 후보자가) 사법부 독립에 적합한 분인지, 소장으로서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는 분인지 판단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보다 더 국민의당 책임론을 명확히 할 말은 없다. 안 대표의 발언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새 정치를 하겠다던 이가 어느새 목표를 상실하고 정치공학과 당리당략이라는 구태정치에 물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약자와 소수자의 기본권 옹호를 위해 애써온 김이수 후보자가 부적합하다는 가치 판단을 했다면, 안 대표는 무엇 때문에 정치를 하려는지 정말 알 수 없다.
안 대표와 국민의당은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 촛불 이후 국민은 전방위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법원과 검찰 개혁은 시대적 과제 중 하나다. 눈앞의 작은 성취에 급급해 민심의 요구를 외면해선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서는 과감히 질타하고 견제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개혁의 씨앗을 짓밟아선 곤란하다. 국민의당이 좌표를 잃고 구태정치의 행태를 보인다면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피하기 어렵다. 결정권은 여의도 정치권에 있는 게 아니라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을 안 대표는 마음에 새겨야 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1일 오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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