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만 19살 이하 아동 10명 중 1명꼴로 주거빈곤에 처했다는 사실이 정부의 첫 공식 통계자료로 확인됐다. 곰팡이 냄새를 없애기 위해 24시간 방향제를 뿌리거나 누전 등 사고 위험에 늘 노출되는 집, 성인도 거주하기 쉽지 않은 이런 열악한 환경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미래’라면서 지금까지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었다는 게 부끄러울 뿐이다. 주거복지 기준에 아동을 우선시하는 등 정부의 정책 변화가 절실하다.
<한겨레>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입수한 통계청 통계개발원 자료를 보면, 최저 주거기준에 못 미치거나 지하방·옥탑방에 살거나 쪽방·고시원 같은 비주택에 거주하는 아동은 모두 94만4천명에 이른다. 전체 아동의 9.7% 규모다. 한부모가정 가구나 소년소녀가장 가구의 경우 주거빈곤율은 2~3배 더 높다. 열악한 주거환경이 아동들의 알레르기·천식 같은 질병뿐 아니라, 우울증·분노·과잉행동 같은 정신적 영향을 미치고 학업 성취와 안전 문제 등과도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점은 국내외 연구가 하나같이 지적하는 사실이다.
국외에선 ‘아동 우선 주택’ 같은 개념들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영국 주택법은 주거위기 가구에 거처를 제공할 의무를 지방정부에 두는데, 임신 여성과 19살 미만 아동 가정은 우선적인 대상이 된다. 또 영국과 미국은 아동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주택기준을 법제화했다. 유엔 아동권협약도 적절한 주거환경에 거주할 수 없는 상황, 특히 아동이 있는 가구는 사회에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자가주택 공급 확대 위주로 정책을 펴온 우리나라에서 주거빈곤 문제는 오랜 세월 뒷전이었다. 그나마 투표권이 있는 노인세대나 청년세대의 경우 최근 몇년 새 주거복지 논의가 활발해졌지만, 아동의 경우는 여전히 관심 밖이다. 우선 아동 주거빈곤의 실태 파악부터 제대로 하자. 임대주택 배정이나 임대료 지원 때 아동 가구에 우선순위를 두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주거지원 때 단순히 면적 위주의 최저 주거기준을 적용할 게 아니라 실제 ‘살만한 집’인지 등을 기준으로 삼는 정책 전환이 절실하다. 영국의 정책 슬로건처럼, ‘모든 아이들은 중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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