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김정은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한 완전파괴’ 폭언에 맞서 22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본인 명의로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고 말하는 등 막말을 퍼부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자신의 명의로 성명을 내놓은 건 처음이라서 그 심각성을 더한다. 김 위원장은 성명에서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조치 단행을 심중히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과 미국의 최고지도자가 끝 간 데 없이 높은 수위의 ‘말폭탄'을 주고받는 건 ‘트럼프-김정은 조합’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문제는 이런 ‘치킨게임’ 양상이 ‘말’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한반도의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두 사람 모두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즉흥적이어서 우발적 상황이 겹치면 자칫 돌이킬 수 없는 판단 잘못을 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김 위원장은 성명에서 “국가와 인민의 존엄과 명예, 그리고 나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망발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받아낼 것”이라고 위협했다. 조만간 이전보다 훨씬 강한 도발에 나설 것을 북한 주민들에게 공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뉴욕을 방문 중인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이를 구체적으로 “수소탄 시험을 태평양상에서 하는 것”이라고 부연설명까지 했다. 가뜩이나 북한이 노동당 창건일인 10월10일을 앞두고 고강도 군사도발 감행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있던 참이었다. 또 미국은 21일(현지시각) ‘세컨더리 보이콧’ 성격의 고강도 제재 조처를 내놓으며 대북 압박의 고삐를 더욱 죄고 있다.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 최대 피해자는 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가 북-미의 이런 극한 대치를 마냥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절실한 이유다. 한-미 공조는 ‘압박과 제재’만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다. 우리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에 떠밀려만 갈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설득에 나서 북한과 미국의 군사적 긴장을 덜어내는 중재자 역할을 떠안아야 한다.
유엔 총회 연설에서 ‘평화’를 호소한 문재인 대통령이 이어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선 미국 최첨단 무기 도입과 전략자산 순환배치 확대 등 군사력 강화 외에 ‘평화적 방법’과 관련된 실천적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또 한·미·일 정상회담에선 ‘제재’ 목소리만 함께 높였다. 이해는 되지만, 안타까움과 우려를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