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미군 B-1B랜서와 F-15 전투기가 23일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미국 전투기들은 이날 DMZ 최북단까지 비행했으며 동해적 북방한계선을 넘어 북쪽으로 올라간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방부가 공개한 사진이다.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에서 촉발된 미국과 북한의 ‘말폭탄 대결’이 구체적인 군사행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 국방부는 23일 밤(한국시각) 폭격기 B-1B 랜서 여러 대를 괌에서 출격시켜 북한 동해의 국제공역을 비행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의 휴전선 최북단 비행으로, 전례 없는 ‘무력시위’다. B-1B 랜서는 미국의 3대 전략폭격기로, ‘죽음의 백조’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미국은 이번 비행이 ‘북한의 긴장 고조 행위 억제용’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북한이 미국에 대한 핵공격 가능성을 거론하는 등 ‘말폭탄’ 수위가 극도로 높아지는 상황에서, 다음달 10일 노동당 창건일을 전후해 추가 도발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강력한 무력시위로 이를 억지하고 협상장으로 나오도록 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미국은 ‘선제타격 시위용’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과연 북한도 그렇게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이번 북-미 간 말폭탄 대결의 책임을 따지자면, 단기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9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한 완전 파괴’ ‘김정은의 자살 임무 수행’ 등 거친 언사를 퍼부은 것이 시발점이다. 이후 김정은 위원장의 ‘늙다리’ 성명(22일)에 이어 리용호 북한 외무상도 23일(현지시각) 유엔 연설에서 “군사적 공격 기미를 보일 때는 가차 없는 선제행동으로 예방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투전꾼’, ‘거짓말의 왕초’, ‘최고통사령관’, ‘악통령’ 등 온갖 막말을 퍼부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그때마다 김정은 위원장을 ‘미치광이’, ‘리틀 로켓맨’이라 부르며 조롱과 협박을 이어갔다.
이번 72차 유엔 총회는 역대 최악의 유엔 총회로 기록될 것이다. 유엔의 설립 목적은 ‘전쟁 방지, 평화 유지, 국제협력 촉진’이다. 그런데 미국과 북한은 평화의 전당인 유엔 총회장을 군사 위협과 전쟁 공포를 불어넣은 무대로 만들어 버렸다. 그 결과, 유엔 총회를 통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기는커녕 극도로 높아졌다. 특히 리용호 외무상의 ‘태평양 수소탄 실험’ 발언과 미국의 이번 B-1B 출격으로 양쪽 모두 ‘방어적 목적의 선제타격’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모두 한반도를 위기로 몰아넣는 언행을 지금 당장 중단해야 한다. ‘평화’를 주창하는 우리 정부도 위기 해소를 위해 더욱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