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고위공직자가 재직 당시 업무와 연관성이 있는 곳에 취업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퇴직 공직자 취업제한 심사’가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이 29일 국무조정실로부터 제출받은 ‘퇴직 공직자 재취업 심사 승인 현황 자료’를 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고위공직자가 재취업 승인 신청을 한 2143건 중 1947건(91%)이 승인됐다. 불허된 경우는 196건(9%)에 그쳤다. 이쯤 되면 무사통과라 할 수 있다.
공직자윤리법은 4급 이상 공직자는 퇴직 전 5년간 소속했던 기관·부서의 업무와 관련이 있는 곳에 퇴직일로부터 3년간 재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공직자윤리위 승인이 있으면 예외로 해준다. 그런데 예외 조항이 지나치게 확대 적용되다 보니 대부분 승인이 나고 있다. 공직자윤리위가 고위공직자의 재취업 알선 창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자료를 보면, 공직자윤리위 심사를 통과한 고위공직자의 절반(49%)이 대기업이나 로펌 등에 취업했다. 삼성그룹에 취업한 경우가 124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현대차그룹 57명, 한화그룹 45명, 김앤장과 태평양을 비롯한 대형 로펌 45명 등의 차례였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 출신은 주로 대형 로펌, 금융위원회 출신은 금융회사, 군 출신은 방위산업체에 많이 취업했다. 또 이들의 취업은 초고속으로 이뤄졌다. 퇴직 뒤 1년 안에 취업한 비율이 85%에 이르고, 1개월 안에 취업한 경우도 35%나 됐다. 일부는 재취업을 먼저 하고서 심사를 받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재벌이나 로펌이 거액의 연봉을 제공하면서 고위공직자를 영입하는 이유는 뻔하다. 이들이 ‘친정’인 정부 부처를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해 방패막이가 되어주거나 로비 창구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 결과 ‘봐주기 조사’나 ‘솜방망이 처벌’ 같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그 피해는 힘없는 중소기업이나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공직자윤리위의 허술한 재취업 심사가 정경유착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무겁게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취업제한 제도의 취지를 살리려면, 무엇보다 구멍 뚫린 심사를 손봐야 한다. 업무 관련성을 엄정하게 해석하고, 예외 적용은 최대한 배제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