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를 정조준한 ‘8·2 부동산 대책’이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 고위공직자의 42%가 다주택 보유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이 정부 정책을 어떻게 바라볼지 걱정이 앞선다. 배신감을 느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용기 자유한국당 의원이 인사혁신처에서 받은 재산등록 자료를 바탕으로 청와대·국무총리실·중앙부처 등의 1급 이상 공직자 655명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보면, 275명이 주택을 2채 이상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5채 이상 보유한 경우도 16명이나 됐다. 또 655명이 보유한 주택 1006채 중 666채(66%)가 투기과열지구에 있고,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으로 중복 지정된 서울 강남 4구에 위치한 주택도 277채(28%)나 됐다.
물론 다주택 고위공직자들이 모두 부동산 투기를 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새집을 장만했으나 살던 집이 팔리지 않거나 갑자기 상속을 받는 등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일시적으로 다주택 보유자가 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위공직자 10명 중 4명꼴로 다주택자라는 것은 그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국내 전체 가구 중 다주택 가구는 14%다. 고위공직자가 일반 국민보다 3배나 많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진정으로 집값 안정을 위해 발 벗고 나설 것이라고 어느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다주택자는 살지 않는 집을 좀 파시라”며 양도소득세가 강화되는 내년 4월까지 말미를 줬다. 고위공직자들부터 솔선수범해 살지 않는 집을 처분해야 할 것이다. 내년 재산변동 신고 때는 다주택 고위공직자 비율이 대폭 줄어야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높아질 수 있다.
다수의 고위공직자가 강남에 살면서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하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돈을 불리는 수단으로 부동산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주택 보유가 부동산 시장을 왜곡해 집값을 올리고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을 빼앗는다는 점이다. 다주택 수요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면 양도세 강화와 대출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다주택자들이 부동산 정책이 바뀔 때까지 버티면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등 보유세 강화가 불가피한 이유다. 보유세 인상을 통해 다주택 보유가 실제로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해야 투기 수요를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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