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때 국가정보원이 <한국방송>(KBS) 보도국장에게 특정 기사를 보도하지 말아달라며 돈을 건넸다고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23일 밝혔다. 당시 보도국장은 고대영 현 한국방송 사장이다. 사실이라면 매우 충격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국정원 개혁위는 당시 한국방송 담당 요원의 진술 등을 확인했다고 했는데, 검찰 수사를 통해 진위가 철저하게 가려져야 할 것이다.
국정원 개혁위의 발표 내용을 보면, 2009년 5월7일 국정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불구속 수사 방침을 검찰에 전하는 등 수사개입 의혹이 있다고 <조선일보>가 보도하자, 국정원은 한국방송 담당 요원을 통해 한국방송 쪽에 ‘관련 기사를 내보내지 말아달라’는 요청과 함께 보도국장에게 현금 200만원을 집행했다고 한다. 국정원 개혁위는 이런 의혹이 뇌물죄에 해당될 여지가 있어 검찰 수사의뢰를 권고했다며, 담당 요원의 진술은 물론 예산신청서·자금결산서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고대영 한국방송 사장은 “국정원 관계자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없고 더군다나 기사를 대가로 돈 받은 적은 없다”고 반박하며 법적 대응 방침까지 시사했다. 해당 요원의 진술과 당사자인 고 사장의 주장이 엇갈리는 만큼 진실은 철저한 조사를 통해 가려져야 할 것이다. 국정원은 개혁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검찰에 수사의뢰를 해서 명명백백하게 사실관계를 밝혀야 한다. 돈을 받거나 국정원 요청으로 기사를 누락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고 사장은 공영방송 경영자로서 자격이 없는 만큼 그에 걸맞은 법적, 도의적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하다.
또 이날 발표에선 국정원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직적인 ‘흠집내기’에 나섰고 검찰 수사권에도 관여한 사실이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2009년 4월21일 이인규 당시 대검찰청 중수부장을 만난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의 측근 간부는 “고가시계 수수 건 등은 중요한 사안이 아니므로 언론에 흘려서 적당히 망신 주는 선에서 활용하시고, 수사는 불구속으로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동안 노 전 대통령의 ‘명품시계’ 수수와 ‘논두렁 투기’ 의혹 보도의 뒤엔 국정원과 검찰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덕적 흠집을 내려 했던 ‘이명박 국정원’의 행태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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