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에 가려 중견기업의 부당행위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재벌 이상으로 ‘일감 몰아주기’나 ‘편법 상속’ 같은 부당행위를 일삼는 중견기업이 적지 않다. 부당행위 규제가 재벌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탓이 크다. 또 중견기업은 규제가 덜하다 보니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의식도 희박한 편이다.
자산 규모 3조원대인 사조그룹의 일감 몰아주기가 대표적 사례다. 일감 몰아주기는 사주가 자신이 대주주인 회사에 계열사들의 일감을 몰아줘 사적 이익을 챙기는 행위다.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악용되는데, 일감을 몰아준 계열사들은 기업 가치가 훼손되고 주주들은 손실을 입게 된다. 한 회사가 일감을 독식하다 보니 같은 업종의 중소기업들은 처음부터 경쟁 기회를 박탈당한다. 기업 혁신을 가로막고 경제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경제 적폐’라 할 수 있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은 장남이 대주주로 있는 비상장사 사조시스템즈를 통해 사조산업 지분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3세 승계를 했다. 사조시스템즈의 사조산업 지분은 2014년 2%에서 2년 만에 24%로 껑충 뛰었다. 사조시스템즈는 사조산업 지분 매입에 약 480억원을 썼는데, 이 돈을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마련했다. 사조시스템즈의 2010~2016년 계열사 내부거래 비중은 56~91%로, 이 기간 동안 매출액과 자산이 각각 6배가량 증가했다. 주 회장의 장남이 정상적으로 주식을 물려받았다면 약 240억원의 세금을 내야 했지만,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3조원대 그룹을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승계한 것이다. 삼성, 현대차, 에스케이(SK), 한화 등 재벌들의 행태를 빼다 박았다.
경제개혁연구소 자료를 보면, 농심 동원 성우하이텍 에스피시(SPC) 오뚜기 한국콜마 한미사이언스 한샘 한일시멘트 등 웬만한 중견기업들은 대부분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고 있다. 올해 5월 대기업집단(재벌)으로 지정된 하림그룹도 김흥국 회장이 중견기업 시절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장남에게 편법 상속을 한 혐의가 뒤늦게 포착돼, 공정거래위원회가 직권조사를 하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자산 5조원 이상 그룹에 대해서만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하고 있다. 그러나 부당행위 여부는 기업 규모와 관계가 없다. 따라서 규제도 기업의 규모와 무관하게 해야 한다. 규모가 작다고 예외일 수 없다. 부당행위에 대한 규제는 모든 기업에 적용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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