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구 금융위원장이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차명계좌에 있는 재산이라도 수사당국 등에 의해 (다른 사람의 것임이) 확인된 경우라면 비실명재산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과거 차명계좌에 넣어 관리하고 있던 비자금에서 발생한 이자와 배당 소득에 대해 금융실명제법 5조에 따른 ‘차등 과세’를 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금융위가 늦게나마 법 취지와 판례에 맞는 유권해석을 내린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건희 회장이 임직원 등 다른 사람 명의의 계좌에 4조4천억원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2008년 삼성 특별검사의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이 회장 쪽은 이 비자금을 실명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실명제법 5조는 비실명거래 금융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와 배당 소득에 대해 90% 세율로 소득세를 원천징수하고, 지방소득세를 포함해 99%를 과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08년 말 삼성이 실명 전환을 마무리했다고 밝혔을 때 국민은 당연히 ‘차등 과세’ 규정에 따른 세금을 낸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이 회장은 실명 전환 절차를 생략하고 비자금 대부분을 탈없이 찾아간 것으로 최근 드러났다.
이 회장 쪽이 돈을 찾아갈 때 금융회사들이 왜 원천징수를 하지 않았는지는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금융위는 최 위원장의 30일 발언에 대해 보도 참고자료를 내 “금융당국은 사후에 객관적 증거에 의해 확인된 차명계좌는 차등 과세 대상이라는 원칙을 적용해왔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의 차명계좌 비자금은 실명 전환 대상이 아니라고 유권해석을 해준 일이 없다는 것이다. 금융회사들이 감독당국의 지침 없이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믿기지 않는다. 어느 쪽에 책임이 있는지 확실히 따지고 넘어가야 한다.
차명계좌의 비자금이 드러났을 때, 이 회장 쪽은 실명 전환하고 세금을 내고 사회공헌에 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돈은 슬쩍 다 찾아가고, 사회공헌은 나몰라라 했으니 불신과 냉소만 키우고 말았다. 차등 과세 규정에 따라 세금을 걷으면 1조원 안팎에 이른다고 한다. 한승희 국세청장은 “기획재정부와 긴밀히 협의해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위의 유권해석이 명확히 나왔으니, 곧바로 과세 절차에 착수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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