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을 했다. 국정을 두루 언급했지만 정치적으로는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을 국회에 공식적으로 요청한 대목이 특히 눈에 띈다. ‘여소야대’ 현실을 고려한 듯 야당을 설득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점도 평가할 만하다.
무엇보다 ‘내년 지방선거 국민투표 동시 실시’를 강조하며 국회에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을 거듭 촉구한 대목은 정치적 의미가 크다. 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강조해온 내용이지만 여야 국회의원들 앞에서 공식 요청했다는 점에서 그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정치권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권력구조 문제는 빼놓고 기본권, 지방분권만 언급했다. 국회가 권력구조에 합의하지 못한다면 기본권과 지방분권 등 합의한 분야에 한정해서라도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월 취임 100일 회견에서도 ‘대통령 발의 개헌’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이런 뜻을 밝힌 바 있다.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거듭 강력한 개헌 의지를 천명함에 따라 국회가 어떤 형태로든 응답할 차례가 됐다. 국회도 개헌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모두 대선후보 시절 개헌을 약속했다. 국회는 개헌특위와 전문가자문위원회를 가동하고 있고 권역별 개헌 대토론회도 진행했다. 개헌특위는 내년 2월까지 초안을 마련하고 3월엔 개헌안을 발의한다는 일정표를 짰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개헌안 합의 도출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훨씬 높다.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정치권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특히 홍준표 대표는 개헌 논의를 내년 지방선거 이후로 미루자고 하고 있다.
개헌 이슈에서 권력구조를 제외한 기본권 강화와 지방분권에 대해선 어느 정도 국민적 동의가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 국민의 찬성 여론이 높고 여야 모두 이견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권력구조가 합의되지 않았다고 개헌 자체를 포기할 일은 아니다. 정치권이 끝까지 권력구조 개편에 합의하지 못할 경우 기본권과 지방분권만이라도 개헌을 추진하는 방안을 진지하고 책임 있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정치권은 권력구조 합의를 위한 노력을 끝까지 멈추지 말아야 한다. 정당 간 이해 조정이 어려우면 공론조사와 같은 방식으로 권력구조에 관한 의견을 국민에게 물을 수도 있다. 지방선거가 가까워 오는데도 방학 숙제 미루듯이 개헌 논의를 계속 외면하는 건 무책임하다.
역대 대통령들도 개헌을 공약했지만 막상 집권한 뒤엔 논의 자체를 꺼렸다. 임기 초반 개헌을 제기한 건 문 대통령이 처음일 것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개헌을 국민적 논의 테이블에 올릴지 기약하기 어렵다. 국회가 개헌 논의의 가닥을 잡고 책임 있게 나설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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