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마다 성희롱 예방교육이 의무화된 지 10년이 넘었다. 직장 내 성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도 줄곧 이뤄져왔다. 그럼에도 최근 우리는 또다시 충격적인 사건을 접해야 했다. 남성중심적이고 위계질서 강한 기업문화가 직접 배경이지만, 더불어 사회 전체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제2의 한샘, 현대카드 사건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최근 알려진 한샘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은 특별하면서도 동시에 전형적이다. 사회 새내기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남자 동기로부터 몰카 범죄를 당하고, 교육 담당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했고, 인사팀장으로부터 사건 무마 회유·압력과 성희롱을 당했다. 같은 직장에서 짧은 시기에 세번씩 이런 일을 겪은 데 사람들은 놀라고 분노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확산되는 몰카 범죄, 회식과 술자리에서 자주 발생하는 성희롱과 성폭력을 주변에서 많은 이들이 이미 겪고 있다.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범죄의 종합판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일부에선 왜 모텔에 가거나 뒤늦게 폭로하느냐며 2차 가해를 했는데, 이는 그 누구도 쉽게 해선 안 될 말이다. 가해자로부터의 보복 두려움,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다는 주변의 압력과 회유, 자신에게 쏟아질 시선 등 피해자가 져야 할 부담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회사가 나를 지켜줄 것이란 믿음도 갖기 어렵다. 게다가 한샘과 현대카드 사건의 피해자들은 신입이거나 비정규직 등 위계질서 강한 회사 내 약자였다. 두 회사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조처를 다했다는 입장이지만, 피해자의 관점에서 피해자의 처지를 고려한 사건 처리는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비단 두 기업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경찰청 자료를 보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범죄’는 2012년 341건에서 2016년 545건, 올해는 8월까지 370건으로 꾸준히 증가 추세다. 직장에서 성폭행, 성추행 등의 피해를 입고 고용노동청에 신고한 여성근로자도 4년 새 2배 이상 늘어 지난해 556건이었다. 고용노동부가 한샘의 근로감독에 나서고, 사업주에게 직장 내 성범죄 피해자 보호조치를 의무화하는 법적 논의가 최근 나오는 건 당연한 조처로 환영한다. 하지만 성범죄 피해자 중심의 관점, 근본적으론 기업 내 여성들을 동등한 동료로 인정하는 인식이 자리잡지 않는다면 시스템은 그저 시스템에 그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