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국회에서 연설을 마친 뒤 의원들의 박수가 이어지자 엄지를 들어 보이며 화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일 국회 연설에서 북한 체제를 맹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주민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열거하면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잔악한 독재자’로, 북한을 ‘지옥’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제는 힘의 시대”라며 “우리를 과소평가하지도, 시험하지도 말라”고 경고했다. 중국·러시아 등에 북한과의 외교·무역 관계 단절을 요구하고, 국제사회엔 “어떤 형태의 (대북) 지원이나 공급도 부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연설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인식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북한을 대화 상대가 아닌 굴복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 방한에서 한-미 동맹을 재확인하는 등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둔 게 사실이다. 7일 국빈 만찬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를 초청해 트럼프 대통령과 포옹하게 한 것도 외교적 성과로 꼽을 만하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것’보다 ‘말하지 않은 것’에 더 비중을 두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듯하다. 대북 문제에선 ‘화염과 공포’, ‘군사옵션’을 얘기하지 않았고, 통상 문제에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시사하지 않았고, 중국과 사드 갈등을 봉합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표방한 ‘3노’(사드 추가 배치 않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에 불참하고,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겠다)에 대해 이견을 표출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를 최대한 배려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국회 연설에서 확인할 수 있듯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서 새로운 해법을 갖고 있지 않으며, ‘압박·제재’ 외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문 대통령의 ‘평화실현 5대 원칙’과 트럼프 대통령의 ‘힘에 의한 평화’를 같은 방향이라고 볼 수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미국 일자리 창출’임이 확인됐다. 대북 압박과 그로 인한 무기 구매 촉진은 그 목적에 부합하지만, 우리가 같은 입장이 되긴 힘들다.
이제 문재인 정부가 북핵과 동북아 평화 문제를 푸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문 대통령은 중국과의 갈등을 푸는 단추를 채웠고,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는 ‘코리아 패싱은 없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끌어냈다. 이를 발판으로 한국이 북핵 문제의 해법을 먼저 미국에 제시하고 트럼프 행정부를 견인해내야 한다.
아울러 오는 10~11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함께 나서도록 유도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을 통해 한-미 동맹의 발판을 다진 것은 대중 관계에서 한국의 공간을 넓히는 효과를 지닌다. 이는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균형잡힌 외교 역량이 더욱 중요해짐을 뜻하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떠난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의 외교가 제대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