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본부 조합원들이 지난 8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본관 앞에서 '고대영 사장 퇴진 투쟁 선포식'을 열어 고 사장 퇴진과 이사회 해체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고대영 <한국방송>(KBS) 사장과 이인호 한국방송 이사장이 방송법 개정안 처리를 조건으로 사퇴 뜻을 밝혔다. 실상을 뜯어보면 두달 넘는 구성원들의 파업에 꿈쩍 않던 기존의 태도에서 크게 바뀐 게 없는 내용이다.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한국방송 노조와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새노조)의 분열을 획책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한국방송 노조는 10일 0시부터 파업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방송법 개정은 고 사장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고 사장은 지난 정권에서 공영방송을 어용방송으로 전락시킨 책임자로, 이미 내부 구성원들과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게다가 그는 보도국장 시절 국가정보원 요원으로부터 특정 기사를 내보내지 말아달라는 요청과 함께 현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고 사장의 발언은 자신의 임기인 내년 11월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겠다는 ‘꼼수’로 볼 수밖에 없다. 지난해 7월 당시 야3당이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 부칙 조항엔 법 통과 3개월 뒤 시행되고 시행일로부터 3개월 뒤 이사진 구성과 사장 선출이 규정되어 있다. 시간문제일 뿐 방송법이 개정되면 사장직에서 물러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현재 국회 상황에서 이른 시일 내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새노조는 “방송법에 사장 퇴진을 연계한 건 결국 고 사장의 적폐 체제 수명을 늘려주자는 얘기”라고 지적하며 파업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고 사장과 이인호 이사장이 연이틀 방송법 개정을 조건으로 ‘사퇴’를 입에 올린 것은 지난 1년 내내 이 법안에 줄기차게 반대해온 자유한국당이 태도를 180도 바꾼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방송법 개정은 공영방송 사장의 거취와는 별개의 문제다. 방송 중단으로 인한 국민 불편에 책임감을 느낀다면, 고 사장은 사원들의 뜻에 따라 당장 물러나는 게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