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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설] 외환위기 20년, 이제는 국민 고통 덜어줄 때다

등록 2017-11-19 18:28수정 2017-11-20 09:26

1997년 12월3일 임창열 경제부총리(가운데)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협상 타결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 임 부총리,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 총재. 한겨레 자료사진
1997년 12월3일 임창열 경제부총리(가운데)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협상 타결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 임 부총리,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 총재. 한겨레 자료사진
20년 전인 1997년 11월21일, 한국 경제가 국가 부도의 벼랑 끝으로 몰리자 김영삼 정부는 두 손을 들고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국제통화기금의 고강도 구조조정 요구를 수용하면서 국민들은 피눈물 나는 세월을 견뎌내야만 했다. 덕분에 2001년 8월 구제금융 195억달러를 전액 상환하고 ‘아이엠에프 체제’를 조기 졸업할 수 있었다.

외환위기는 97년 7월 태국에서 촉발된 동남아시아의 외환위기가 한국으로 번졌고 그 여파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제히 자금을 회수하고 해외 차입이 막히면서 외환보유고가 바닥난 게 직접적 원인이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재벌경제, 금융부실, 정경유착, 부정부패 등 오랜 세월 누적돼온 내부의 구조적 문제들이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찾아온 재앙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외환위기의 직접적 원인이 됐던 대외건전성은 몰라보게 좋아졌다. 97년 말 204억달러까지 줄었던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3845억달러로 18배 이상 늘었다. 세계에서 9번째로 많다. 97년 103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던 경상수지는 올해 1~9월 누적 흑자가 934억달러에 이른다. 덕분에 97년 말 투기 등급인 ‘B+’까지 떨어졌던 국가신용등급은 현재 11단계나 올라 ‘AA’를 기록하고 있다. 세번째로 높은 등급이다. 중국과 일본보다 2단계 높다.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안정성과 수익성도 크게 개선됐다. 20년 전 같은 외환위기를 다시 겪을 가능성이 매우 낮아진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국민의 희생으로 이렇게 정부와 기업은 살아났지만, 국민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4일 발표한 ‘외환위기 발생 20년 국민 인식 조사’를 보면, 가장 많은 32%가 외환위기의 부정적 영향으로 ‘양극화 심화’를 꼽았다. ‘실업 문제 심화’(28%)와 ‘비정규직 확대’(26%)가 뒤를 이었다. 국민이 현실에서 겪고 있는 고통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해마다 늘어나 지난해 기준 849만명에 이른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40%를 넘는다. 외환위기로 인력 구조조정이 일상화하면서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졌다. 직장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이 생계형 창업에 나서면서 자영업 과잉과 가계부채 문제를 키우고 있다. 소득 불평등은 더 악화됐다. 소득 최상위 10% 계층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9년 32.9%에서 2015년 48.5%로 커졌다.

외환위기 직후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던 재벌개혁도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 밀려 시늉만 내고 흐지부지됐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더 커졌고 황제경영도 그대로다. 정경유착의 낡은 관행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경제의 활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저성장이 고착화하고 있으며, 그나마 성장을 해도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이 이어지고 있다. 97년 5.7%였던 청년실업률이 지난해 9.8%로 치솟았다. 체감실업률은 21.7%로 청년 5명 중 1명이 사실상 실업 상태에 놓여 있다.

외환위기 뒤 뒤틀린 사회·경제 구조를 바로 세워야 한다. 촛불의 요구도 단순한 정치권력의 교체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불공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요구였다. 20년 전 국민의 희생으로 국가경제와 기업이 살아났다면, 이젠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고 삶의 질을 끌어올려야 할 때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양극화를 해소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도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 관련 기사 : IMF 외환위기 최대 상처는 양극화·실업·비정규직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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