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어린이들이 평북 향산의 한 유치원에서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제공한 음식을 먹고 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 제공
정부가 지난 9월 대북 인도적 지원 재개 방침을 발표한 뒤 두달이 지나도록 이행하지 않고 있다. 유니세프와 세계식량계획(WFP) 등의 요청에 따라 800만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게 9월21일이다. 당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분리해 추진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방침을 강조했다. 통일부는 북한 영·유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전하며 지원이 “시급하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는 “지원 시기와 규모는 남북관계 상황 등 전반적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진하기로 했다”는 말만 반복한다. ‘인도적 지원과 정치적 상황을 분리한다’면서 ‘남북관계 상황을 고려한다’는 건 또 무슨 말인가.
정부 처지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북한은 전혀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국내 여론을 살펴야 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도 신경쓰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북 인도적 지원은 ‘직접 지원’이 아닌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이다. 대상도 영·유아와 여성 등 취약계층에 국한돼 있다. 국제기구는 현장 접근을 못하면 지원을 않기에, 우려하는 ‘전용’ 가능성도 없다. 또 유엔 기구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유엔 대북 제재 결의와 상충되지도 않는다. 유엔 제재는 ‘북한 정권’을 옥죄자는 것이지,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다. 비록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의 결정이긴 하지만, 미국도 올해 유니세프에 100만달러를 지원했다.
최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넘어온 북한 병사의 몸에 기생충이 많이 나왔다는 사실만 봐도, 북한 일반 주민의 상태가 어떨지는 익히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의 5살 이하 어린이 사망자 수가 1천명당 25명(남한 3명)에 이른다. 어린이 사망 원인 중 22%가 의약품만 있으면 치료가 가능한 설사와 급성호흡기질환이다. 국제사회 지원이 이 아이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인도적 지원은 정치가 아닌 휴머니즘의 문제다. 정부는 당당하게 대북 인도적 지원을 실행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