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여의도 케이비(KB)국민은행 본점에서 열린 케이비금융지주 임시 주주총회에서 노조원 주주가 윤종규 회장에게 질의를 하려고 손을 들고 있다.
관심을 모은 케이비(KB)금융지주의 노동조합 추천 사외이사 선임이 무산됐다. 20일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노조가 ‘주주 제안’ 방식으로 상정한 하승수 변호사의 사외이사 선임 안건이 출석 주식 중 17.7%의 찬성을 얻는 데 그쳐 부결됐다.
하지만 이번 주총을 통해 민간 기업에서도 노동자의 경영 참여 문제가 공론화됐다는 점은 그 의미가 적지 않다. 국내 주요 기업 가운데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 안건이 주총에 올라온 것 자체가 처음이다. 또 지분율 9.8%로 케이비금융의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찬성을 한 것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국민연금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국내 상장기업 276곳의 지분을 5% 이상씩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앞으로도 계속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한다는 방침이다.
노동자의 경영 참여는 무엇보다 노사관계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노사가 경영 정보와 의사결정의 판단 근거를 공유하게 되면 소모적인 갈등을 많이 줄일 수 있다. 또 경영 현안에 함께 책임을 지게 되면 생산성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 산하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노동이사제’(공식 명칭은 ‘근로자 이사제’) 조례를 제정하고, 전체 16개 기관 중 12곳에서 이사를 임명했다. 노동이사제는 노조 추천 사외이사보다 한 단계 더 나간 것으로, 노동자 대표를 의무적으로 이사로 임명하는 것이다. 광주광역시도 지난달 조례를 제정했고, 성남시는 추진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7월 발표한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서 “내년부터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럽에선 독일 등 19개 국가가 노동이사제를 시행하고 있다.
재계는 노동자의 경영 참여가 경영권을 침해하는 것일 뿐 아니라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 회사 전체의 발전보다는 노동자의 이익만 내세워 의사결정을 지연시키거나 왜곡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노동자를 대표하는 사외이사 한명이 다수의 이사로 구성되는 이사회에 참여하는 걸 두고 ‘경영권 침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오히려 국내 기업들의 문제는 이사회가 독립성을 잃고 대주주의 거수기 노릇을 하는 것이다. 적당히 대주주의 입장을 맞춰주면서 고액의 보수를 챙겨 가는 사외이사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한다면 감시와 견제의 기능이 강화돼 경영 투명성이 높아지고 기업 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 재계는 노동자를 자꾸 경영에서 배제하려고만 할 게 아니라 열린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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