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 백악관에서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방침을 밝혔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20일(현지시각) 북한을 9년 만에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다. 또한 시진핑 국가주석의 특사로 북한을 방문했던 쑹타오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과 시 주석의 북한 특사 파견으로 ‘대화 국면’을 기대했던 한반도 상황이 또다시 극도의 갈등·긴장 국면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아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테러지원국 재지정 이유로 “북한은 핵 초토화로 전 세계를 위협하는 것에 더해, 외국 영토에서의 암살 등을 포함해 국제 테러리즘을 지원하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해왔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 북한 당국 및 관련 개인·단체에 대한 추가 제재와 불이익을 더하겠다면서, ‘최대의 압박’ 공세를 가속화할 것임을 예고했다.
테러지원국 재지정, ‘북한 압박’ 효과 의문
미국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은 북한을 압박해 협상 테이블로 복귀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추가적인 핵·미사일 도발의 ‘명분’을 주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미국과 한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이 ‘대화로 가는 문을 닫는 것’이라며 비판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또한 효과에도 의문이 인다. 북한은 이미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미국 등으로부터 전방위적 제재를 받고 있기에, 테러지원국 재지정에 따른 추가 제재로 입게 될 타격은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
테러지원국 재지정의 논리적 허점도 있다.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 근거는 ‘김정남 암살’이다. ‘김정남 암살’은 일반적인 ‘테러’ 개념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국내정치적 다툼 또는 숙청의 성격이 짙다. 미 국무부는 테러지원국 지정 요건으로 ‘테러조직에 대한 기획·훈련·수송·물질 지원, 직간접적 금융 지원, 국제테러리즘을 반복적으로 지원하는 행동’ 등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 요건과도 잘 들어맞지 않는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는 북한에 대한 ‘낙인 효과’를 노린 것이며, 다분히 미 국내의 대북 강경 여론을 의식한 행동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발표하면서 이와 관련 없는 오토 웜비어 사망 사건을 언급한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상황 악화엔 북한의 책임도 크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 9일 정상회담에서, 쑹타오 특사 파견을 통한 북한의 협상 의사 타진에 합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이미 결정해놓고 발표 시기를 잠시 미룬 것도, 쑹타오 방북을 통해 북한의 ‘대화 의사’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쑹타오 특사를 아예 만나주질 않았다고 하니, 이는 ‘추가 핵·미사일 도발을 통한 핵 무력 완성’으로 나가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중국도 중재자로서의 운신 폭이 좁아졌다. 한반도 문제를 풀 수 있는 축은 약해지고 장애물은 더 높아진 셈이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둔 한국 정부 부담은 훨씬 커졌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도 인내심을 갖고,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해 군사적 긴장 고조를 막고, 북한을 제한적이더라도 ‘교류의 장’으로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멈춰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