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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설] ‘노동착취’ 현장실습 제도, 언제까지 이대로 둘 건가

등록 2017-11-23 18:14수정 2017-11-23 19:08

현장실습을 나갔다 지난 19일 숨진 제주지역 특성화고 3년생 이민호(18)군의 분향소. 제주/허호준 기자
현장실습을 나갔다 지난 19일 숨진 제주지역 특성화고 3년생 이민호(18)군의 분향소. 제주/허호준 기자
특성화고 3학년 학생이 현장실습 중이던 공장에서 프레스에 눌려 숨졌다. 이민호군, 18살이다. 어머니는 “식물인간도 좋다. 내가 데리고 있을 테니 무조건 살려만 주세요”라며, 의사에게 매달렸다. 아버지는 울분을 터뜨리다가도 “첫 월급 받았다고 아빠 엄마 모시고 저녁식사 대접했다”는 아들 이야기를 하며 허허로이 웃었다.

사고를 돌아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아직 학생 신분으로 일에 익숙하지 않았을 민호는 사실상 장시간 격무에 시달리는 노동자로 생활했다. 평일엔 공장에서 자고, 주말에만 집에 왔다. ‘현장실습 표준협약서’는 실습시간을 ‘하루 7시간 이내’로 규정하고 있지만, 민호는 11~12시간을 일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사고 전날 밤 마지막이 된 아들과의 통화에서 ‘끼니 거르지 말라’며 야단을 쳐야 했다. 정규 직원이 그만둔 뒤론 라인을 홀로 뛰어다니며 점검했다. 기계는 자주 멈췄고, 직접 고쳐야 했다. 9월에도 기계를 점검하다 떨어져서 갈비뼈를 다쳐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다. 이렇게 위험한데도, 사고 당시 현장에는 민호 옆에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프레스에 목이 짓눌릴 때 아무도 그 상황을 못 봤고, 민호 홀로 버텨야 했다.

이번 사고는 현장실습생 제도의 총체적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성화고 3학년 학생들은 현장실습을 거쳐야 졸업을 할 수 있다. 현장에서 업무를 배우고 경험해 취업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취지는 ‘학습’이다. 그런데 실제론 학습보다 단순노무에 집중 투입된다. 회사는 정규 직원들이 꺼리는 일을 실습생들에게 떠맡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실습생들은 임금이 아니라 실습수당을 받는데, 최저임금에 못 미치기도 한다. 노동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사회생활도 처음인 실습생들은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제대로 항의도 못할 때가 태반이다. 이건 교육도 노동도 아니다.

현장을 살피는 업무는 고용노동부가 아닌 교사에게 맡겨져 있다. 교사는 노무 관련 전문성도 떨어질 뿐 아니라 업체를 강제할 권한도 없다. 전체 3만여곳 실습업체 가운데 교육부가 직접 현장을 점검하는 곳도 매년 20곳 수준이라 한다. 지난해 교육부에 적발된 업체 가운데 노동부로부터 과태료 처분을 받은 업체가 한 곳도 없었다고 한다. 사태가 일어난 뒤에도, 회사는 “이군이 정지버튼을 누르지 않고 들어갔다”며 민호군의 과실을 내세운다. 학교는 “회사와 학부모의 (산재·보상) 합의는 학교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뒤로 빠진다. 책임지려는 이도, 기관도 없다.

현장실습생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월 엘지유플러스(LGU+) 전주고객센터 현장실습생 홍아무개양이 “콜수를 다 못 채웠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에는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현장실습생 김아무개군이 열차에 치여 숨졌다. 18살, 19살이었다. 사고가 날 때마다 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제도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당국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특성화고 재학생들은 “현장실습이 두렵다”고 했다. 이런 식이라면, 이 제도를 왜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광화문광장에서는 20일부터 특성화고 학생들이 추모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이 아이들에게 참으로 부끄럽고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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