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2022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을 목표로 내년 3월부터 연구·선도학교 100개교를 운영한다고 27일 밝혔다. 대학처럼 학생들이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이수하고 누적학점이 기준에 도달하면 졸업을 인정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교육공약으로, 제대로 시행된다면 입시 위주의 고교교육 패러다임을 뒤바꿀 수 있는 제도다.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확대하고, 학교 안에서 교육을 다양화한다는 기본 취지는 긍정적이다. 그동안 ‘다양성’ 확대라는 명목 아래 특목고·자사고 등으로 고교를 서열화하면서 공교육이 초토화됐던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교육은 온갖 제도와 이해관계가 뒤얽힌 우리 사회의 대표적 난제다. 어느 한 제도가 줄세우기와 주입식 교육을 한꺼번에 바꿀 ‘마법’일 순 없다. 고교학점제의 경우 학년제는 그대로 두는 건지, 대입제도와 어떻게 연계할지 미지수이다 보니 실체가 아직 모호하다. 다른 학교와 연계해서 듣는 공동교육과정은 학급 석차를 기재하지 않는 성취평가 방식을 적용한다지만, 실제 학생들이 학교 담장을 넘어 얼마나 선택할지 의문이다. 게다가 나머지 수업은 여전히 상대평가식이다. 이렇다 보니, 오히려 국어·수학 등 이른바 주요 과목으로의 쏠림 현상만 강화하거나 도농 격차를 벌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수업 이동을 위한 충분한 시설, 교사의 자질 향상 및 행정업무 경감 등 과제도 산적해 있다.
새 교육제도를 도입하는 결정은 국가교육회의에서 중등교육과정 전반을 검토하는 작업과 연계하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이전 정부들처럼 ‘현 정부 임기 내 완성’ 같은 조급증을 갖지 않길 바란다. 교육부 스스로 “단계적 준비와 공론화를 거쳐 제도를 확산하겠다”고 한 만큼, 속도에 연연하지 말고 시범운영의 성과와 한계를 충분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