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세칭 ‘김영란법’) 시행령의 일부 조항을 완화하려던 정부 방침에 급제동이 걸렸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7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3-5-10’(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 10만원) 규정을 일부 조정하는 방안을 확정하려 했지만 격론 끝에 부결됐다. 정부는 공직자 등에 대한 선물 한도를 농축수산품에 한해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사실상 확정했으나 외부위원들이 참여하는 전원위원회에서 가로막힌 것이다. 정부는 시행령 완화 방침을 거둬들이는 게 바람직하다.
농축수산품 분야에서 생산자들의 피해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한번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또다른 예외를 요구하고 나오기 마련이다. 다른 업종에서 피해를 호소하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경우 정부는 어떻게 할 건가. 농축수산품에 가공품을 포함할지, 가공품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를 두고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농축수산품에 한정한다지만, 이번 조처가 결과적으로 청탁금지법 전반의 후퇴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직무와 관련이 없는 선물은 5만원을 초과하더라도 1회 100만원 이내인 경우엔 위법이 아니다. 직무 관련성이 없다면 10만원이 넘는 농축수산품을 선물하는 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선물 상한액 인상이 불러올 부정적 영향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농축수산품에 예외를 허용해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이유다.
이른바 ‘3·5·10 조항’이 절대 손대서는 안 될 ‘불변의 원칙’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공직자 등은 직무와 관련이 있는 경우엔 식사든, 선물이든 액수와 무관하게 받지 않는 게 ‘원칙’이며, 선물 상한액 조항은 단지 ‘원활한 직무수행’ 등을 위한 일부 예외에 해당할 뿐이다. 이미 예외가 있는데, 자꾸 또다른 예외를 두거나 그 예외를 확대하자고 하면 법 취지가 무색해진다. ‘3·5·10 조항’은 설령 개정하더라도 충분한 논의와 여론수렴을 거쳐서 천천히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청탁금지법은 우리 사회 오랜 관행과 문화를 바꿔보자는 사회적 공감대 아래 시행됐다. 부족한 건 보완하고 문제가 있으면 고쳐야겠지만 이를 핑계로 법 자체를 후퇴시키려 해선 안 될 것이다. 법이 시행된 지 14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정부가 권익위 전원위원회조차 반대하는 시행령 완화를 억지로 밀어붙이는 건 명분이 부족하다.
청탁금지법 영향으로 선물시장이 얼어붙었다지만 최고급 선물세트는 여전히 팔린다. 138만원짜리 한우 선물세트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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