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08년 4월22일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에서 비자금 사건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가 또 드러났다. 2008년 조준웅 삼성 특검이 이 회장의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찾아낸 4조5천억원 규모의 1199개 차명계좌 외에 또다른 다수의 차명계좌를 국세청이 적발했다. 국세청은 최근 이 사실을 더불어민주당의 ‘이건희 차명계좌 태스크포스’에 보고했다. 하지만 국세청은 ‘개별 납세자 과세정보 비밀보호 규정’에 따라 차명계좌 수와 금액 등 구체적 내용은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국세청은 재벌 총수 일가 등 거액 재산가들의 주식·예금·부동산 등 차명재산을 지속적으로 찾아내고 있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2012~2016년 차명재산 적발 현황’을 보면, 국세청은 5년 동안 1만1776명이 보유한 9조3천여억원 상당의 차명재산을 적발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 특검 수사 뒤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차명계좌를 실명 전환하고 누락된 세금 등을 모두 납부한 후 남는 돈을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약속했다. 마치 자신의 모든 차명계좌가 공개된 것처럼 얘기했다. 하지만 차명계좌가 추가로 적발되면서 사실이 아닌 게 드러났다. 거짓말을 한 셈이다.
앞서 차명계좌의 실명 전환을 전부 마쳤다는 삼성 주장도 지난달 거짓으로 확인됐다. 금융실명제법 위반에 따른 세금과 과징금을 내고 실명 전환 절차를 정상적으로 밟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차명계좌의 돈을 인출해 이 회장 계좌로 명의만 변경했다. 세금 등을 납부한 뒤 남은 돈을 유익한 일에 쓰겠다는 약속도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 회장의 차명계좌가 계속 발견되면서 돈의 실체에 대한 의심이 커진다. 특검 수사 때 삼성은 고 이병철 창업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이라고 해명했고 특검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회장이 총수직을 승계했던 1987년 삼성그룹의 연간 총매출이 13조5천억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차명계좌의 규모가 너무 크다. 상속 재산이 아니라 이 회장이 회삿돈으로 조성한 비자금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국세청이 과세정보 비밀보호를 이유로 내용 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대국민 약속이 거짓으로 드러난 마당에 뭘 보호해주겠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차명계좌 개설은 금융질서를 어지럽히고 조세정의를 훼손하는 불법행위다. 국세청과 금융감독원은 이 회장의 차명계좌 실태 조사부터 전면적으로 다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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