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을 지키지 못한 건 2014년 개정 국회법(국회선진화법) 시행 뒤 사실상 처음이다. 헌법에 명문화된 시한(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을 넘겼으니 국회가 제 할 일을 제대로 못한 셈이다. 국회는 4일 예정된 본회의에선 꼭 예산안을 처리하기 바란다.
예산안 늑장 처리는 국회의 고질이었다. 연말까지 질질 끌다가 12월31일 밤늦게야 처리하는 경우가 잦았다. 2002년 이후 11년 연속 법정시한을 넘긴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있다. 이런 폐해를 개선하기 위해 법정시한 전날(12월1일) 자정을 넘기면 예산안이 본회의에 자동으로 상정되도록 ‘예산안 자동부의제’까지 도입했다. 한동안 잘 지키는가 싶더니 올해 또다시 시한을 어기고 말았다. 법까지 고쳐가며 애써 만든 제도를 입법부 스스로 무력화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여야 모두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국민의 바람을 앞에 놓고 여야가 논의한다면, 예산안 쟁점 중 타협하지 못할 건 별로 없다. 현재 핵심 쟁점은 공무원 증원 숫자인데, 양쪽 주장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내년에 충원하는 인력은 파출소, 고용센터 등 주로 안전 분야 현장 공무원이라 증원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야당은 공무원을 한번 증원하면 30년 동안 지속적으로 인건비가 늘어난다며 재정 부담을 지적한다. 정부는 정기국회 이후에라도 공무원 증원에 따른 연도별 재정 소요치를 분명히 제시해 야당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안전 분야 공무원 증원은 야당도 기회 있을 때마다 국민에게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 1호 공약’이니까 어떻게든 손을 봐야겠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공무원 증원 규모를 둘러싼 이견 때문에 예산안을 파행시킨다는 건 국민들로선 납득하기 어렵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문제도 이렇게 평행선을 달릴 사안이 아니다. 여당은 일단 내년에는 정부안 3조원으로 시행하되 2019년에는 1조5천억원으로 줄이는 협상안을 내놓았다. 올해 최저임금 16% 인상으로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는 인건비 부담이 늘어났다. 정부가 지원하지 않으면 고용이 위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단기적 충격 완화를 위해 한시적이나마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야당도 부인하지 못한다. 야당은 내후년 이후 지원 문제를 거듭 지적하는데, 앞으로 진행되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검토할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 차차 논의해도 될 문제다.
여당은 대선 공약을 지키기 위해 아무래도 집권 첫해 예산에 더욱 집착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여소야대 국회이니 뜻대로만 할 수 없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야당도 의석수를 앞세워 예산안을 멈춰세워선 결코 국민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여야 모두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혹시라도 여야 타협이 실패해 야당이 예산안을 부결시키는 사태는 없어야 한다.
내년 예산안 법정 시한 내 처리가 불발된 2일 밤 9시50분께 국회 본회의가 정회되자 여야 의원들이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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