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처음 발표한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에 우리나라를 포함시켰다. 17개국 가운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우리나라뿐이다. 국제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유럽연합의 판단에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구석도 많지만, 조세회피처로 지목당할 만한 일이 없음에도 이를 막지 못한 정부의 어설픈 외교는 더욱 할 말을 잃게 한다.
유럽연합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17개국을 ‘비협조 국가’로 분류했고, 유럽연합 세법 기준엔 부합하지 않지만 관련법규를 바꾸기로 한 ‘관찰 대상 국가’(그레이리스트)로 47개국을 지목했다. 역내 국가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유럽연합은 제재 방안을 발표하지 않았으나, 명단에 이름이 오른 것만으로 우리 신뢰도엔 흠이 났다.
유럽연합은 우리나라가 경제자유구역, 외국인투자지역 등에서 외국인 투자에 5~7년간 법인세를 감면하는 것이 ‘유해 조세제도’라며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이런 설명이 맞다면, 유럽연합 판정은 매우 유감스럽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이런 세제 지원을 유해 조세제도로 보지 않는다. 유럽연합이 경제협력개발기구, 주요 20개국(G20)의 유해 조세제도 평가 결과를 수용하기로 해놓고 이와 다른 결정을 했다면, 국제 합의에 위배되는 조세주권 침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손 놓고 있었다는 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는 유럽연합에 제도의 유해성을 함께 분석한 뒤 합의해서 제도 개선을 검토하자고 제안했다는데, 그 뒤 사태를 방치한 것 같다. 스위스, 홍콩, 터키 등이 블랙리스트에서 빠진 것과 비교된다. 유럽연합에 해명할 건 해명하고, 협상할 게 있으면 서둘러 해야 할 것이다. 이참에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에만 있고 투자유치 효과는 크지 않은 ‘외국인 투자자 차등 세제’도 존속 여부를 면밀히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