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비열한 흑색선전 윤곽이 뒤늦게 드러나고 있다. 10여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DJ) 100억원 양도성예금증서(CD) 의혹’을 주성영 전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보한 인물이 박주원 국민의당 최고위원이라니 놀라운 일이다. 박 최고위원은 “10년 넘은 얘기”라고 얼버무릴 게 아니라, 진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2008년 국회에서 ‘디제이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주성영 전 의원은 결국 명예훼손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폭로 내용이 허위였음이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정보를 제공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의 명예에 먹칠을 하고 가족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긴 제보자는 지금껏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그 제보자가 ‘디제이 정신 계승’을 외치는 정당에서 최고 지도부의 일원으로 버젓이 행세했다니,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 사건은 ‘정치 흑색선전’의 전형을 보여줬다. ‘대검에서 취득한 정확한 정보’로 그럴듯하게 포장한 허위사실이 당시 한나라당에 전달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흠집 내는 데 활용됐다. 가짜정보가 건네진 2006년 지방선거에서 ‘대검 정보기획관실 정보관’ 출신의 박 최고위원은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경기 안산시장에 당선됐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만약 거짓정보를 제공해 전직 대통령을 음해한 대가로 공천장을 받았다면, 정치 도의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다.
안철수 대표는 ‘사실확인 이후 상응한 조처’를 언급하면서도 “정치적 의도를 가진 음해인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 측근인 박 최고위원을 겨냥했다고 벌써부터 사건의 배경을 의심하면서 ‘음모론’을 거론하는 건 매우 부적절한 처사다. 지금 중요한 건 사실관계를 분명히 따지는 일이지 정치적 의도 여부가 아니다. 안 대표는 사안의 엄중함을 무겁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박 최고위원이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당원권 정지, 최고위원직 사퇴로 끝내거나 아리송한 해명으로 어물쩍 넘기려 한다면 큰 오산이다. 주성영 전 의원은 폭로 당사자로서 법적 책임을 졌다고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제보 입수 경위 등 진실을 낱낱이 밝히는 게 옳다. 정치적 이득을 노린 허위폭로와 흑색선전은 근절해야 할 추악한 범죄다. 사건의 진상을 끝까지 파헤치고 관련자들에겐 엄중한 법적,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디제이 비자금 허위폭로’ 제보자로 지목된 박주원(왼쪽 두번째) 국민의당 최고위원이 지난 9월 10일 제2창당위원회 현판식에 참석해 안철수 대표 바로 옆에서 가림막을 걷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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