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영 사장 퇴진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요구하며 지난 9월 시작된 한국방송 노조의 파업이 12일로 100일을 맞는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한국방송 구성원들의 ‘비리 이사 해임 촉구’ 24시간 릴레이 발언이 엿새가 넘게 계속되고 있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과 성재호 한국방송 새노조 위원장은 무기한 단식을 벌이고 있다. 한국방송을 ‘국민의 방송’으로 되돌리기 위한 구성원들의 파업이 한여름 뙤약볕에서 시작돼 한겨울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2012년 95일 파업 기록을 넘어선, 한국방송 사상 최장기 파업이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 고대영 사장-이인호 이사장 체제에 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당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박근혜 시대가 만들어낸 경영진과 이사진은 여태껏 버티고 있다. 이들이 방송을 주무르고 있으니 최근 방송통신위원회 ‘지상파 재허가 심사 결과’에서 한국방송이 ‘재허가 탈락 점수’를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방송의 공적 책임을 소홀히 하고 공정성·공익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내버린 결과다. 한국방송이 사실상 공영방송으로서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상황이 이 정도면 한국방송 이사회는 진즉 경영진에게 책임을 물었어야 한다. 그러나 이사회 자체가 비리에 연루된 판에 이들에게 한국방송 정상화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허망한 일이다. 지난달 감사원의 한국방송 이사진 감사 결과에서 여러 이사가 이사로서 도덕적 자격을 잃었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상당수 옛 여권 출신 이사가 거액의 업무추진비(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한 것으로 확인됐거나, 사적 유용 가능성이 큰데도 소명하지 못했다. 이인호 이사장은 2800만원이 넘는 금액을 부당하게 사용한 것으로 의심받았다. 강규형 이사와 차기환 이사도 수백만원씩 직무 관련성이 없는 곳에 법인카드를 썼다. 모두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피 같은 돈이다.
감사원이 이 ‘비리 이사’들에 대해 ‘해임 건의 등 적정한 인사조처 방안을 마련하라’고 방통위에 통보한 지도 2주가 훌쩍 넘었다. 그런데도 방통위는 지금껏 아무런 조처도 하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있다. 한국방송 구성원들의 고통스러운 혹한 파업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서는 안 된다. 방통위는 더 머뭇거리지 말고 비리에 연루된 이사들의 해임 절차를 밟는 게 옳다. 한국방송이 치욕스러운 과거를 떨쳐버리고 국민을 위한 공정방송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