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바른정당과의 통합 찬반 당원투표에 대표직을 걸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0일 바른정당과의 통합 찬반을 묻는 전당원투표를 전격 제안했다. 연내에 전당원투표를 실시해 찬성이 많으면 연초부터 곧바로 통합 절차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반대 의견이 우세하면 대표직 사퇴 등 거취를 결심하겠다고 했다. 당내에서 논란이 계속되자 자신의 재신임과 연계한 정면돌파 카드를 던진 것이다. 당 안팎에선 안 대표가 전당원투표를 추진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의 통합 선언을 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안 대표의 이런 행보는 우려스러운 대목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당 대 당 통합’ 같은 인위적인 합종연횡은 총선에서 드러난 민의를 왜곡하는 것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제3당에 올라서도록 투표한 이들은 정권교체와 합리적 개혁을 지지하는 야권 성향 유권자들이었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을 견제하기 위해 호남과 수도권의 야당 지지자들이 황금분할식 투표를 통해 국민의당을 밀어줬다. 유권자들은 국민의당의 개혁과 온건진보 노선을 지지했던 것인데, 이제 와서 바른정당과 합쳐 ‘중도보수’의 길을 가겠다는 것은 총선 민의와 어긋나는 것이다.
안 대표의 통합 행보는 스스로 내세웠던 정책과 가치를 내팽개친 채 세 불리기에만 골몰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민의당은 총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안 대표는 올해 대선을 거치며 외교안보 정책에서 애매한 행보를 거듭하더니 이제는 햇볕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와 한솥밥을 먹겠다고 한다. 안 대표가 회견에서 국민의당 호남 중진들을 겨냥해 “구태정치”라고 비판했지만, 정책이나 가치를 버리고 입지 확보에만 골몰하는 것이야말로 구태정치와 다를 게 무엇이겠는가.
안 대표의 행보를 두고는 결국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통해 보수 진영 대표주자가 돼서 정권 창출을 시도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안 대표는 최근 자유한국당까지 아우르는 범중도보수 통합에 나서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 “그럴 일은 없다. 자유한국당은 주변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수 진영이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안 대표의 최근 행보는 그런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안 대표가 이날 오후 열린 의원총회에 불참한 것도 폭이 좁아 보인다. 전격적으로 기자회견을 한 만큼 의총에 와서 소속 의원들에게 이를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어야 했다. 갈라설 때 갈라서더라도 최소한의 정치적 예의는 갖춰야 한다.
‘새 정치’를 내세웠던 안 대표가 현실정치의 입지 확보를 위해 변신을 거듭하며 우향우 행보를 하는 것은 씁쓸하기 짝이 없다. 정치의 세계가 변화무쌍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도리는 있다. 안 대표는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자신에게 표를 준 유권자들의 뜻을 다시 한번 새겨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