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 삼성물산 주식 매각물량을 500만주로 결정한 근거인 가이드라인(지침)의 오류를 인정하고 바로잡기로 했다. 이에 따라 삼성은 500만주에 더해 404만주를 추가로 매각해야 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1일 가이드라인 변경에 관한 브리핑에서 “당시 공정위가 내용적 완결성은 물론 정당성도 지키지 못했던 점을 통렬히 반성한다”고 사과했다. 공정위의 가이드라인 정정은 2년 전 삼성물산 주식 매각물량 결정 과정에서 삼성의 로비와 ‘박근혜 청와대’의 외압이 작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검 수사결과를 보면, 2015년 공정위 실무진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발생한 신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삼성물산 주식 1000만주를 매각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리고 정재찬 당시 위원장의 결재까지 받았다. 그러나 삼성이 자사에 유리하게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도록 공정위와 청와대 등에 로비를 벌였고, 김학현 당시 부위원장이 실무진에게 압력을 넣어 주식 매각물량을 500만주로 대폭 축소시켰다. 법원도 올해 8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판결에서 ‘삼성의 성공한 로비’가 공정위의 방침을 바꿨다고 판단했다.
일부에서는 이번에 변경한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2년 전 결정을 뒤집는 것은 ‘소급 적용’이라고 주장한다. 가이드라인이 수정되었다는 이유로 이전에 정해진 결정을 바꾼다면 기업 경영활동의 예측 가능성을 해치고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그러나 법률은 그대로이고 해석 기준만 바뀌었다는 점에서 소급 적용 주장은 무리가 있다. 오히려 잘못을 알고도 계속 방치한다면 그게 더 큰 문제다. 로비와 외압으로 왜곡된 가이드라인을 바로잡아 제대로 된 결정을 다시 내리는 것이 올바른 일이다.
공정위가 뒤늦게나마 가이드라인을 정정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걸로 끝낼 일이 아니다. ‘경제 검찰’이어야 할 공정위가 재벌 하수인 노릇을 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공정위는 이재용 부회장 재판과는 별개로 2년 전 잘못된 결정을 내린 과정과 배경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엄중히 묻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뼈를 깎는 자정 노력만이 추락한 신뢰를 회복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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