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수도’라는 선언에 반대하는 결의안이 찬성 128표로 통과되고 있다. 뉴욕/신화 연합뉴스
유엔은 21일(현지시각)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수도’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언을 거부하는 결의안을 찬성 128, 반대 9라는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반대 국가엔 원조를 끊겠다고 ‘협박’하고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미국은 (유엔에) 기여하라고 요청받을 때 오늘을 기억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흐름을 돌리진 못했다.
이번 일은 미국의 국제적 위상 추락을 여실히 보여준다. 유엔의 리더였던 미국이 어느새 국제 질서의 ‘수호자’에서 ‘파괴자’로 바뀌어 골칫거리가 된 것이다.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국제사회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별개 국가로 간주하는 ‘2국가 해법’과, 점령지를 수도로 인정할 수 없다는 데 오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스라엘의 갖은 요구와 로비에도 미국은 이 ‘선’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다분히 국내정치적 목적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사회 혼란을 무시한 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언했다.
게다가 유엔총회 표결을 앞두고선 마치 ‘깡패’처럼 노골적으로 다른 나라를 협박했다. 세계가 알던 예전의 미국이 아니다.
미국은 어려움을 겪는 나라들에 ‘원조를 중단하겠다’며 찬성표를 강요했다. 치졸한 짓이다. 또 ‘유엔 분담금’을 언급했다. 올해 유엔 예산의 22%를 미국이 부담했다. 미국 없이 유엔은 운영될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원조’와 ‘유엔 분담금’을 온전히 이타적인 자선사업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은 초강대국이자 경제대국인 미국 국익과 직결된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18일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미 국가안보전략의 근간으로 ‘원칙에 입각한 현실주의’(principled realism)를 제시했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무대에서 벌이는 행동엔 ‘원칙’도 ‘현실’도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