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315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및 위안부 피해자 추모제에서 정대협 관계자들이 올해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영정사진 앞에 꽃을 놓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한-일 위안부 합의 전말을 검토한 태스크포스(TF)의 발표로 2015년 한·일 정부 간 합의의 숨겨진 부분이 드러나면서 국민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중대한 흠결이 있었음이 확인됐다”며 “국민과 함께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사실상 ‘추가 협의’를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티에프 발표 이후, “합의는 1㎜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노 다로 외상도 “‘전 정권이 한 건 모른다’고 한다면 앞으로 어떤 것도 합의하기 힘들다”, “비공개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건 유감”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이 지적하는 ‘합의 형식의 타당성’은 물론 일리가 있다. 그러나 ‘합의를 지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본 언론들조차 “위안부 합의의 핵심 정신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아사히신문>), “일본 정부는 ‘피해자 관점이 결여됐다’는 보고서 지적에 겸허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도쿄신문>)고 언급하는 점에 일본 정부도 주목해야 한다.
한·일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왜 하려 했는지 그 근본 이유를 되돌아보라.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이젠 ‘미래’만 보며 대충 덮고 지나가자는 건 아니지 않은가. 2015년의 한-일 위안부 합의안 어디에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관점’이 들어 있다고 과연 말할 수 있는가. 당시 주요 내용을 ‘비공개’했던 건 누구를 위한 ‘비공개’였던가. 결국 정권에 부담이 되는 내용을 숨기려 했던 것 아닌가. 이런 물음에 당시 합의를 했던 한·일 정부 당국자들은 분명히 답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어쨌든 합의를 했으니 지키라’고 주장하는 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의 일본 위상 제고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위안부 합의’는 서로 유리한 걸 주고받는 식의 통상협정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역사적 의미와 인류 공통의 가치를 되새기는 숭고한 작업이다. 이를 밀실에서 주고받기식으로 ‘거래’한 뒤 두 나라 국민에게 감추고 거짓말한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비단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몰염치만 탓할 게 아니라, 일본 아베 정부 역시 이 책임을 엄중하게 지는 게 마땅하다. 지금이라도 일본 정부는 두 나라가 ‘위안부 합의’에 왜 나섰는지를 돌아보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한국과 일본의 미래지향적 관계에 도움이 될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