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기쁨은 새해 첫날이 주는 선물입니다. 태양은 똑같은 태양이지만 새해를 밝히며 떠오르는 태양은 결코 어제의 태양이 아닙니다. 주변의 모든 물상도 여느 날과 달리 미묘한 떨림을 동반한 채 다가옵니다. 찬물로 세수하고, 헌 옷이지만 정갈하게 빨래한 옷으로 갈아입고 새 달력 앞에 서면, 가슴은 어느새 희망이 넘실대는 아침 바다가 됩니다.
1년 전 이날, 우리는 많은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격심한 변화와 소용돌이의 한 해를 예감하는 설렘과 희망, 두려움과 꿈에 대해 말했습니다. 정녕 지난 1년은 질풍노도의 한 해였습니다. 겨울의 차가운 광장에서 더욱 뜨거웠던 영혼들은 꽃 피는 봄에 마침내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헌법적 가치를 비롯해 오염되고 망가졌던 우리의 소중한 가치들이 다시금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각 분야에서 흐르기 시작한 도도한 물줄기는 한국 사회를 대전환의 바다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새로운 시작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길목에서 다시금 아득히 그날의 함성이 들려옵니다.
2018년 새해 아침, 우리 모두 가슴에 촛불 한 자루를 피워올립시다. 그리고 맑은 눈동자로 그 촛불을 응시합시다. 수직으로 비상하는 촛불의 불꽃을 바라보며 우리가 정녕 꿈꾸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다시금 생각합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 곳곳의 부패와 부정, 반칙과 특권의 광맥은 파도 파도 끝이 없습니다. 한 시대를 짓눌렀던 폭력과 야만의 실상을 접하는 심정은 참으로 참담합니다. 적폐 청산 피로감을 들먹이며 ‘이제 그만하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고서 새로운 지평은 열리지 않습니다. 과거와의 썩은 끈을 끊어낸 자리에 세월이 가도 흔들리지 않을 튼튼한 법과 제도의 탑을 올해 안에 확고히 쌓아야 합니다. 새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헌법을 마련하는 일은 그중에서도 으뜸입니다.
대전환의 흐름 속에서는 갈등과 대립의 세찬 격랑도 일게 마련입니다. 경제, 노동, 복지, 에너지, 의료 등 각 분야의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에서 각자의 이해관계, 이념과 철학의 차이에 따른 극심한 대립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촛불을 함께했던 사람들 사이에도 갈등과 반목은 존재합니다. 반동의 기회를 노리는 수구보수 세력의 갈등 조장도 참으로 극심합니다. 이를 돌파할 강고한 개혁 연대는 아직 눈에 띄지 않습니다. 건강한 토론과 협의, 공동의 목표에 이르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향한 노력도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등장했습니다.
이 모든 것도 중요하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일이야말로 올해의 가장 중요한 화두입니다. 미국과 북한이 강 대 강의 극한적 대립으로 치닫는 가운데 우리 앞에 놓인 절체절명의 과제입니다. 평화의 요체는 서로의 양보입니다. 이것은 남북한, 미국, 중국 등 모두에게 해당하는 명제입니다. 평화를 위해 한국이 창의적·주도적 활동을 펴나가는 것이 극히 어려운 것은 숨길 수 없는 현실입니다. 미국과 북한의 완강한 태도는 물론이고 남한 내부의 저항과 비판을 극복하는 일부터 지난한 과제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길이라고 해도 기어코 가야 할 길입니다.
우선은 평창올림픽을 평화와 화해의 깃발이 나부끼는 광장, 인간 생명의 활력이 넘쳐나는 거대한 서사시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대립의 물꼬를 평화를 향해 돌리는 모멘텀으로 삼아야 합니다. 올림픽 기간 중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북한 핵 도발 중단 등 모든 가능한 조처를 끌어내 이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2018년은 서로의 손길을 마주 잡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있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의 손을, 행복한 사람들이 소외된 사람들의 손을, 건강한 사람들이 아픈 사람들의 손을 따뜻하게 마주 잡는 한 해여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남과 북이 두 손을 마주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남쪽 사회 내부는 물론 한반도 전체에 평화와 공존, 화해와 상생의 물결이 출렁이길 소망합니다.
2018년은 <한겨레>가 탄생한 지 3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한겨레는 새해의 이런 희망이 실현돼 찬란한 햇빛으로 온 누리를 비추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새해를 맞아 독자 여러분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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