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식품기업 풀무원의 최대주주 남승우(66) 대표이사가 경영권을 자녀가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넘겨줬다. 풀무원은 남 대표가 지난 연말을 끝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이효율(61) 신임 대표를 선임했다고 1일 밝혔다. 이 대표는 풀무원이 법인 설립을 하기 직전인 1983년 입사한 ‘1호 사원’으로 최고경영자 자리에까지 오르게 됐다. 국내 상장기업 가운데 경영권을 가족이 아닌 전문경영인이 승계한 경우는 유한양행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매우 드문 일이다.
남 대표는 3년 전부터 65살이 되는 2017년에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기겠다고 공언해왔다. 평소 소신을 실행으로 옮긴 셈이다. 그는 그동안 여러 차례 “비상장기업은 가족경영이 유리하지만 상장기업은 전문경영인이 승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상장기업을 하면서 가족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긴다. 가족 승계를 하려면 애초에 상장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오래전부터 선진적 지배구조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풀무원은 2008년 국내 식품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지주회사를 도입했다. 그는 “기업 경쟁력의 핵심은 올바른 지배구조에 있다”고 강조해왔다.
남 대표의 이런 결정에는 풀무원의 역사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풀무원의 모태는 ‘유기농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 원경선 ‘풀무원 농장’ 원장이다. 1984년 현대건설에서 근무하던 남 대표는 원 원장의 아들인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권유로 풀무원에 투자하고 경영에 참여했다. 두 사람은 공동대표로 있다가 1987년 원 의원이 정계에 입문하면서 남 대표가 풀무원을 전적으로 맡게 됐다. 남 대표는 창립 초기 직원 10여명으로 시작한 풀무원을 직원 1만여명에 연간 매출 2조원이 넘는 한국의 대표 식품 전문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사실 ‘전문경영인 체제’와 ‘사주 경영’ 중 어느 게 정답인지는 단정 지어 말하기 어렵다. 경영학에서도 대표적으로 정답이 없는 문제로 꼽힌다. 모두 일장일단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은 자녀에게 경영권을 무리하게 물려주려고 온갖 편법과 변칙을 동원하는 데 있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정경유착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또 사주의 자녀들이 경영권을 놓고 골육상쟁을 벌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 결과 기업 이미지와 경쟁력이 추락하고 피해가 국가경제 전체에 고스란히 돌아온다. 남승우 대표에게는 1남2녀의 자녀가 있는데, 장남은 풀무원유에스에이(USA) 마케팅팀장으로 일하고 있고 두 딸은 회사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남 대표는 이번에 풀무원 주식 38만주(10%)를 성실공익법인으로 지정된 풀무원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또 앞으로 기부 주식 수를 계속 늘려나갈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풀무원은 큰 틀에서 소유는 재단이,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맡는 구조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풀무원의 변화가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단초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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