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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겨레 사설] 삼성 ‘실명 전환’ 말만 믿고 손 놓은 한심한 금융당국

등록 2018-01-03 18:19수정 2018-01-03 22:03

2008년 조준웅 삼성 특검은 이건희 회장 비자금 수사에서 4조5천억원 규모의 차명계좌 1199개를 찾아냈다. 이 회장은 특검 수사발표 직후인 4월22일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어 “차명계좌를 실명 전환하고 누락된 세금 등을 모두 납부한 후 남는 돈을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약속했다. 삼성은 2008년 말 삼성생명·삼성전자 등 차명계좌 주식을 실명 전환했다고 공시했다.

그러나 삼성의 말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11월 이 회장의 차명계좌를 점검한 결과, 1229개(금감원이 2008년 추가 적발한 32개 포함) 중 806개만 2008년까지 실명 전환됐고 나머지 423개는 최근까지도 차명 상태로 계속 유지돼온 것으로 확인됐다.

일차적으로 거짓말을 한 삼성의 잘못이 크다. 국민적 충격을 안겨준 비리를 저질러놓고 수습책마저 국민을 속였다니 개탄을 금할 수 없다.

하지만 삼성의 일방적 주장만 믿고 10년 가까이 점검 한번 하지 않은 금융당국 또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삼성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2007년 말 폭로한 ‘이건희 비자금 의혹’은 특검 수사로 이어지면서 당시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 제대로 된 금융당국이라면 삼성이 실명 전환을 마쳤다고 공시를 했을 때 바로 확인 작업에 착수했어야 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10년 동안 손을 놓고 있다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 회장의 차명계좌 관련 의혹을 제기하자 뒤늦게 점검에 나섰다. 심각한 직무유기다.

금융당국은 “금융실명법이 계좌 개설 단계에서 금융기관이 고객의 실명 확인을 제대로 했는지만 따지도록 돼 있어, 차명계좌 적발 이후 상황은 미처 점검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법적 의무는 없다는 얘기인데 한마디로 무사안일의 전형적 행태다. 금융감독기관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 혹시 삼성을 봐주려고 일부러 눈감아준 건 아닌지 의심마저 든다.

금융당국은 자금출처 조사 권한이 없어 삼성이 이 회장의 차명계좌를 장기간 유지한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마침 국세청이 지난달 말 차명계좌를 통한 조세포탈 혐의로 이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고, 서울중앙지검이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삼성이 왜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차명계좌를 장기간 유지했는지, 차명계좌의 돈이 무슨 용도로 쓰였는지,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관여는 없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또 이 회장의 차명계좌가 계속 일부분씩 드러나고 있는 만큼 이참에 전모를 밝혀내는 데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 금융당국과 국세청 등 유관기관들도 범정부 차원에서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 관련 기사 : 이건희 회장, 특검에 적발된 차명계좌 10년간 유지했다

관련 기사 :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 또 나와…국세청, 검찰에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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