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 당국회담이 9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다. 2015년 12월 이후 2년여 만에 열리는 이번 회담은 10년 가까운 남북관계의 공백을 뛰어넘어 새로운 장을 여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회담을 제안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이 제안을 즉각 수용한 뒤 회담 준비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북쪽은 남쪽의 요구를 회담 대표단 구성 문제까지 그대로 수용해 작은 일을 놓고 꼬투리 잡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남과 북이 모두 이 회담에 그만큼 의미를 두고 있음을 방증한다.
국제사회 분위기도 회담 분위기를 밝게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대화 100% 지지’를 천명한 것은 그동안 북-미 대결로 출구를 찾지 못하던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에 큰 변화가 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남과 북이 지혜를 모으면 이번 회담이 대결의 악순환을 넘어 한반도 평화에 전기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높여주는 우호적인 분위기다.
그러나 지나친 욕심은 역효과를 낼 수 있는 만큼 이번 회담에서는 실제적인 문제를 먼저 타결한다는 생각으로 회담에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은 북쪽의 평창올림픽 참가 방식에 의제를 집중해야 한다. 북한 선수단이 군사분계선을 통해 남으로 오면 그것만으로도 한반도 평화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이 될 것이다. 남과 북이 개·폐회식에서 공동 입장을 하는 것도 상징성이 크다. 북한이 응원단이나 예술단을 보낸다면 국민적 관심과 호응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안들이 좋은 방향으로 타결돼 평창올림픽이 남북 공동의 ‘평화 올림픽’이 될 수 있길 바란다.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는 올림픽이지만 의제가 여기에만 한정되지는 않을 것이 확실하다. 남쪽은 이미 지난해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군사회담을 제안한 바 있다.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은 민족 명절인 설연휴와 겹친다. 이 시기에 이산가족이 만난다면 평화 올림픽의 의미가 한층 커질 것이다. 북쪽도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한 만큼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과욕을 부리다가 일을 그르칠 수도 있으므로, 남과 북은 서로 절제하며 합의 가능한 것부터 풀어가는 자세로 회담에 임해야 한다. 어려운 문제에 집착하기보다는 이번 회담을 계기로 삼아 후속 회담이 계속될 수 있도록 큰 틀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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