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12월20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예탁결제원에서 열린 전자투표·전자위임장 모바일서비스 오픈 행사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지난해 ‘슈퍼 주총데이’는 3월24일이었다. 924개 상장기업이 이날 주주총회를 열었다. 전체 상장기업의 45%에 이른다. 슈퍼 주총데이란 12월 결산법인의 주총이 같은 날 몰려 개최되는 것을 말한다. 통상 3월 마지막 주 금요일이다. 기간을 조금 넓혀보면 지난해 3월 하순에 1780곳이 주총을 열었다. 전체의 86%다.
말이 좋아 ‘슈퍼’지 실상은 ‘꼼수’다. 날짜뿐 아니라 주총 개회 시간도 오전 9시로 똑같다. 그러다 보니 여러 주식에 분산투자한 소액주주들은 자신이 투자한 기업의 주총에 전부 참석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대주주가 상정한 안건에 소액주주들이 반대하는 것을 사전 봉쇄하려는 의도다. 재벌 그룹은 계열사들끼리 사전에 정보를 교환해 한날한시로 주총 날짜를 잡는다. 사실상 담합이다. 이사회를 대주주의 측근들로 채우는 것도 모자라서 주총까지 요식행위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상장기업을 대주주의 개인회사로 여기는 그릇된 행태다.
해마다 슈퍼 주총데이에 대한 금융당국의 우려와 언론의 비판이 나오지만 ‘소 귀에 경 읽기’다. 되레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3월 하순에 주총을 연 상장기업 비율이 2015년 68%, 2016년 76%, 2017년 86%로 늘어났다. 금융위원회는 날짜별로 주총 개최가 가능한 상장기업의 최대 숫자를 정해 먼저 신고한 곳에 우선권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만이 그렇게 하는데, 고육책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소액주주를 대하는 기업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에스케이(SK)그룹이 올해부터 에스케이이노베이션, 에스케이텔레콤, 에스케이하이닉스 등 계열사들의 주총을 분산 개최하겠다고 18일 발표했다. 국내 대기업 가운데 처음이다. 에스케이그룹은 지난해 12월엔 전자투표제를 도입했다. 국내 5대 그룹 가운에 처음이다. 전자투표제란 주총에 직접 참석하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제도로, 소액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에스케이그룹의 자발적 변화는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다른 기업들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마침 지난 연말 ‘섀도 보팅’이 27년 만에 폐지됐다. 1991년 임시로 도입됐으나 기업들의 요청으로 계속 유지돼 왔다. 섀도 보팅은 주총에 참석하지 못한 주주의 의결권을 참석한 주주의 찬반 비율에 따라 행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소액주주를 배제하면 앞으로는 주총 의사정족수 미달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이젠 외부의 요구가 없더라도 기업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으로 점점 바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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