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재가로 고대영 <한국방송>(KBS) 사장 해임이 23일 확정됐다. 전날 이인호 이사장도 한국방송 이사회가 고 사장 해임 제청안을 의결한 직후 이사장직에서 사퇴했다. 이로써 한국방송이 부끄러운 과거를 털어내고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갈 길이 열렸다. 140일이 넘는 동안 파업을 벌여온 한국방송 구성원들의 노력과 공영방송다운 공영방송을 요구해온 국민의 염원이 함께 만들어낸 방송 정상화의 첫걸음이라고 할 것이다.
고대영 사장 해임은 사필귀정이다. 그가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서 보도국장-보도본부장-사장으로 재직한 시기에 한국방송은 정권만 바라보는 ‘청와대 방송’으로 전락했다. 지난해 한국방송이 사상 처음 방송통신위원회의 재허가 심사에서 기준 미달 점수를 받은 것은 고대영 체제의 한국방송 위상 추락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한국방송이 영향력과 신뢰도에서 모두 민영방송 <제이티비시>에 추월당하고 국민의 외면을 받게 된 것도 고대영 체제에서 일어난 일이다. 고대영씨는 이사회가 사장 해임 문제를 논의하자 ‘사장 해임은 방송독립과 언론자유를 짓밟은 폭거로 기록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청와대 낙하산’ 논란 속에 등장한 고대영 체제의 경영진이야말로 저널리즘의 가치를 짓밟은 장본인들이다. 한국방송 구성원들이 칼바람 속에서 파업을 벌인 것은 언론자유와 방송독립이라는 원칙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고대영씨 해임보다 중요한 것은 지난 체제에서 누적된 폐해를 씻어내고 한국방송을 공적 책임에 투철한 방송으로 다시 세우는 일이다. 그러자면 한국방송을 이끌 새 사장을 어떻게 뽑을지에 관심과 지혜가 모여야 한다. 한국방송 안팎에서는 <문화방송>을 본받아 사장 선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 경청할 만하다. 실종됐던 보도와 제작의 독립성과 공익성을 되찾아오는 것이 중요한 만큼, 그런 과제를 제대로 수행해낼 수 있는 사람이 뽑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평창겨울올림픽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국가기간방송으로서 한국방송이 해야 할 일이 막중하다. 세계인이 함께하는 ‘평화의 축제’를 보도하는 데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새 사장 선임 절차가 신속하게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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