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이 24일 멜버른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8강전에서 미국 테니스 샌드그렌를 꺾고 한국 테니스 사상 최초로 메이저 대회 4강전에 진출한 뒤 미소짓고 있다.
세계 4대 테니스대회 중 하나인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8강전에서 정현 선수가 24일 미국의 테니스 샌드그런을 꺾고 한국 테니스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많은 이들이 정현의 4강 진출을 보며 박찬호의 첫 메이저리그 진출, 박세리의 첫 엘피지에이(LPGA) 우승이나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제패 및 박태환의 올림픽 수영 금메달을 떠올렸을지 모르겠다.
실제 서구인들에게 최적화된 스포츠라 불리는 테니스는 아시아인들에게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아시아 국적 여자 선수로선 중국의 리나가 두차례 우승했으나 남자 단식은 일본의 니시코리 게이가 유에스(US) 오픈에서 준우승한 게 최고 성적이다. 이형택의 세계 랭킹(36위) 기록도 무너뜨릴 게 확실한 정현은 26일 열리는 4강전 결과에 따라 아시아 테니스의 새 역사를 만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정현의 경기를 보는 즐거움은 이런 ‘기록적 의미’에서만 오는 게 아니다. 올해 22살 청년이 매 경기 매 경기 고비마다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고 테니스를 진정 ‘즐기는’ 진심이 지켜보는 이들에게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정현은 기록 경신보다 최선을 다한 경기에 만족하는 모습, 조코비치와의 16강전에서 그랬듯 패자에게도 존경과 존중의 마음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왔다. 거침없는 영어 실력과 센스 있는 인터뷰에서 보듯 유머 감각도 갖췄다. 1등이나 승리만을 목표로 아등바등 달려온 삶에 익숙한 기성세대에겐 생경하고 신선했다. 그렇다고 그가 ‘꽃길’만 걸은 건 아니다. 매해 몇달씩 부상에 시달리며 랭킹이 떨어지기도 했고, 소속 팀이 해체되면서 ‘홀로’ 후원을 받게 된 데 대한 괴로움도 있었다. 허벅지를 넘어 무릎에까지 생긴 근육은 피나는 훈련을 하며 보낸 그간의 세월을 보여준다.
우리는 유전자가 완전히 달라진 듯한 세대를 보고 있다. 쇼팽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 아메리칸뮤직어워드 무대를 점령한 방탄소년단 등 불과 얼마 전까지 상상하기 어려웠던 불모의 분야에서 맹활약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갖춘, 그 어떤 무대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함과 여유엔 한국의 경제적·문화적 성장 또한 큰 배경이 됐을 것이다. 스포츠와 문화를 넘어, 청년세대 한 사람 한 사람이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사회가 이뤄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