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각) 한국 등 외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명령에 서명하면서 “엘지(LG)와 삼성이 미국에 대규모 세탁기 공장을 짓겠다는 최근 약속을 철저히 이행하는 강력한 유인책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의 이번 조처로 많은 제조 공장들이 세탁기와 태양광 공장을 짓기 위해 미국으로 올 것”이라고도 했다. 세이프가드를 무리하게 발동한 것도 모자라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무역보복 수단을 동원했다는 속내를 공공연하게 드러낸 것이다. 올해 11월 미국 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지지층을 결속하기 위해서라면 국제 규범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얘기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행태다.
세이프가드는 강력한 무역보복 조처이기 때문에 세계무역기구(WTO)는 발동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급격한 수입 증가, 자국 산업의 심각한 피해, 수입 급증과 산업 피해 간의 인과관계라는 3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에 삼성과 엘지를 제소한 미국 월풀은 매출과 영업이익이 오히려 증가했다. 공장 가동 중단이나 인력 감축도 없었다. 이런 까닭에 “미국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미국 언론들조차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러한 조처들은 항상 보복으로 이어져 소비자들에게 해를 끼치고 성장도 저해했다”며 “가장 큰 패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승자라고 말한 미국 노동자와 소비자”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도 “태양광 패널에 대한 관세가 국내 제조업자들에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노동자와 관련 기업 등 산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이피(AP)통신도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으로 중국, 독일, 멕시코 등 미국과 무역 상대국 간의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세이프가드를 “부당한 조처”라고 규정하고 세계무역기구 제소 방침을 밝혔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우선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고 세이프가드 대상국과 공동 대응하는 방안도 적극 협의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하는 국가들과 긴밀하게 공조할 필요가 있다.
마침 23일 개막한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기조연설을 통해 “보호무역주의는 지구 온난화나 테러리즘 못지않게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등 각국 정상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국제 무역질서를 뒤흔들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에 세계 주요 국가들이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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