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평창겨울올림픽 참가 선언 이후 미국에서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외교적 해결론이 이어지고 있다. 먼저 주목할 것이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6자회담 부활’ 발언이다. 키신저는 25일 ‘한반도 비핵화로 가는 최선의 경로는 기존의 6자회담 부활을 통한 합의’라고 밝혔다. 지난해 북한 붕괴에 대비해 미국과 중국이 합의해야 한다는 대북 강경 정책을 주문했던 데서 상당히 바뀐 모습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영향력을 지닌 인사가 이런 발언을 한 것은 미국 안 기류가 ‘압박’ 일변도에서 ‘협상’의 문을 여는 쪽으로 바뀌고 있음을 거듭 느끼게 한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마련된 6자회담은 2003년 시작돼 2007년까지 상당한 성과를 내기도 했으나 북-미 갈등 속에 중단돼 지금껏 열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의 갈등이 극대화하고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겪은 시점에서 보면, 남북한과 주변 4강이 함께하는 6자회담의 재개는 북-미 간 대화를 위한 안전장치 기능을 할 수 있다. 6자회담이 즉각 재개되지 않더라도 재개 논의를 통해 미국과 북한이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작지 않다.
이와 관련해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의 미국 쪽 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특사가 최근 내놓은 조언도 눈길을 끈다. 갈루치는 상황이 미국이 북한에 관여하기에 나쁜 타이밍이 아니라면서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대화를 위한 대화’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시아 문제나 북핵 문제를 직접 다루었던 외교 원로들의 이런 제안에 트럼프 행정부가 귀를 기울이기를 기대한다. 우리 정부도 이런 분위기가 실질적인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북-미 대화의 ‘촉진자’ 구실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한다.
관건은 미국과 북한이 서로 상대방을 얼마나 이해하고 양보하느냐다. 그런 점에서 미국 국방부가 ‘올림픽 폐막 후 즉시 한-미 연합훈련을 재개할 것’이라고 못 박듯이 밝힌 것은 아쉽다. 어렵게 조성된 평화 국면이 원점으로 되돌아가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오히려 훈련을 축소하거나 더 미루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북한을 설득하는 데 유리하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개막 전날 대규모 열병식을 벌이겠다는 것도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국과 북한이 한발씩 물러나 실질적인 대화 국면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25일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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