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결정이 마냥 늦어지는 것은 좋지 않다. 정부의 암호화폐(가상통화) 대책 결정 과정은 자꾸만 후자로 기울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부터 거래소 폐쇄와 과세 등 대책을 거론했지만 어느 쪽으로 나갈지 여전히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시각이 분명하고 일관성이 있다면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먼저 과세 방침을 분명히 하고, 구체적인 과세 방안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
정부가 거래소 폐쇄나 과세 방침을 거론한 지 한달밖에 되지 않았으니, 아직 급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 않다. 암호화폐 거래 시장의 움직임을 보면 1월 초 최고점에 이른 뒤 한달 사이에 어떤 것은 값이 반토막 나고, 어떤 것은 5분의 1로 떨어질 만큼 시장의 변화가 크다. 그 한달 사이에 이뤄진 거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김동연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6일 한 라디오방송에 나와, 모든 부처가 암호화폐 시장을 ‘비이성적 투기 현상’으로 보고 있고, 어떤 형태로든 합리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데 공통된 인식을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하루라도 서둘러 결론을 내려야 마땅하다.
김 부총리는 여전히 정부가 거래소 폐쇄를 ‘옵션’으로 갖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투자 손실을 본 거래 참가자가 많아 이제 와서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폐쇄할 수 있다’고 엄포만 놓기보다는, 과세를 먼저 추진하는 게 옳다. 정부가 외국의 여러 과세 방안을 참고하기 위해 검토 중이라는데, 과세 방안에는 어차피 정답이 없다. 소비를 억제하기 위한 목적의 담뱃세나 주세처럼, 암호화폐 거래를 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목을 신설해 세금을 매겨도 무방할 것이다.
암호화폐는 시장 규모가 엄청나게 커진데다 단기간에 가격 변동 폭이 너무 커서, 이미 상당한 후유증이 불가피한 국면에 와 있다. 정부가 거래 실명제를 도입하면서 신규 자금 유입을 상당 부분 막아, 뒤늦게 거래에 뛰어들어 손실을 보는 사람을 줄인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 거래 실명제를 통해 과세를 집행할 기반도 갖췄다. 하루빨리 입법을 하고 시행함으로써, 한탕을 노리고 위험한 투기에 뛰어드는 사람을 더 줄여야 한다. 예산과 연계된 것이 아닌 만큼 정부는 정기국회 때까지 기다릴 것 없이 암호화폐 과세 법안을 시급히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