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9일 인천공항에 도착해 미소 짓는 모습.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9일 전용기편으로 남한을 찾았다. 이들은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고, 10일엔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한다. 두 사람, 특히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은 북한이 내놓을 수 있는 ‘최상위급 실세 메신저’다. 문재인 대통령이 만나는 자리는 사실상 ‘간접 정상회담’에 가깝다. 이들이 들고 온 북한 최고지도자의 친서 또는 구두 메시지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건군절 열병식 수위 조절에서, 대화에 임하는 북한의 열의와 진정성을 엿볼 수 있다. 남한 정부도 외교적 부담 속에 국제사회의 ‘제재 예외’를 얻어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어렵사리 마련된 자리이니만큼, 의례적 인사말이나 원론적 대화를 나누는 수준에 그쳐선 안 된다. 진지하고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툭 터놓고 얘기하다 보면 예상을 뛰어넘는 진전을 이뤄낼 수도 있다.
남북 최고지도자의 ‘간접 대화’ 성격을 띠는 10일 오찬 회동이 한반도 문제의 국면 전환을 이루는 이정표가 되길 기대한다. 그러려면 폭넓은 수준으로 무게감 있는 대화를 하겠다는 적극적 자세가 중요하다. 남북 모두 과감하고 전향적인 ‘통 큰 대화’를 머뭇거려선 안 된다. 테이블에 올려놓고 대화하지 못할 의제가 없다. 남북 정상회담이나 대북특사 파견 문제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남북관계의 한 단계 높은 진전을 조성하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
한반도 위기의 본질에 접근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북핵’ 문제를 피하고 갈 수는 없다.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면, 북-미 간 대화와 협상이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대표단의 만남이 어떤 형식이든 북-미 간 접촉의 단초를 여는 계기로 이어졌으면 한다. 핵·미사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단박에 찾아낼 수는 없겠지만, 궁극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유난히 춥고 칼바람 불던 이 겨울이 끝나간다. 차갑게 얼어붙은 한반도에도 봄이 오길 온 겨레가 소망한다. 남북 최고위급 당국자들이 평창 올림픽 이후에 더욱 따스해질 봄의 전령사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