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서울 국립중앙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 e등 북한 고위급대표단과 함께 공연을 마친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단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문 대통령,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정상회담이 본격적인 논의의 장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건을 만들어서 성사시키자”고 말해 ‘환영’ 입장 속에서도 신중함을 내비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의 협의 등 한반도 주변 상황을 두루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반도 문제는 ‘남북 둘만의 협의’로 해결될 상황을 넘어선 지 오래다. 하지만 보수층 일각의 주장처럼 ‘비핵화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아예 정상회담을 하지도 말라’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심지어 자유한국당은 공식 논평을 통해 “북핵 폐기가 전제되지 않는 대통령 방북은 이적행위”라고 했는데, 비현실적 정치공세일 뿐이다.
비핵화는 대화의 ‘입구’가 아닌 ‘출구’일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비핵화 약속을 받아내겠다는 건 무리다. 제재를 강화해 북한을 굴복시키겠다는 구상도 실현 가능성이 낮을 뿐 아니라, 한반도를 극도의 군사적 긴장 속으로 몰아넣는 일이다. 남과 북 모두 엄청난 위험을 떠안아야 한다. 그러니 일단 만나서 긴장을 완화하고, 그 선상에서 ‘비핵화’든 뭐든 논의하는 게 합리적이고 타당한 선택이라 본다.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비핵화에 대한 우리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는 건 당연하다. 그 자리에서 ‘핵 포기 약속’까지 받아낸다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비핵화는 한칼에 이뤄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지난하지만 끈질기게 붙들고 나가야 하는 일이다. 더구나 이 사안은 남북 간 문제가 아니다. 북한은 핵 개발 명분으로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들고 있다. 따라서 실질적 진전을 이루려면, 북-미 대화와 협상이 필수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미국 등 주변국을 설득하는 동시에 북-미 접촉 산파 역할까지 떠맡아야 하는 이유다.
귀국 비행기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인터뷰한 <워싱턴 포스트>의 11일(현지시각) 보도를 보면, 펜스 부통령은 문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에 나설 의지와 평창 이후 남북 대화 지지’를 밝혔다 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6일 “적절한 시기가 되면 미국도 (북한과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펜스 부통령이 한국에서 보인 과도한 언행은 트럼프 행정부의 기존 방침보다 더 강경한 측면이 짙다. 이를 기준으로 미국의 정책 방향을 판단해선 안 된다.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비핵화 외에도 남북 간에 논의할 사안이 많다.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문제뿐 아니라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실질적 방안, 휴전선 일대 우발적 군사충돌 방지 등을 협의하는 건 매우 긴요하다.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지만, 평화와 화해의 시대를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을 믿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