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두고 “많은 기대를 하지만 마음이 급한 것 같다”며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란 속담을 인용했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추진하자는 얘기일 것이다. 국내는 물론, 미국과 북한을 향한 메시지도 담겨 있는 것 같다.
예상을 넘어선 북한의 적극적이고 대담한 제안에 국내에선 금방이라도 정상회담이 열릴 것만 같은 기대감이 높아진 게 사실이다. 벌써 북한에 파견할 대북특사의 이름까지 거론되는 등 ‘진도’가 빠르게 나가고 있는 것 같은 착시현상도 보인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은 여전히 신경전만 벌이고 있으니 아직 정상회담 여건이 무르익었다고 보긴 어려운 형편이다. 기대치가 높다고 급하게 가속페달 밟다가 갑자기 장애물을 만나면 더욱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과속’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은 여러 측면에서 충분히 타당한 지적이다.
그렇다고 여건이 조성될 때까지 우리 정부가 손 놓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선,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북-미 대화의 필요성을 더욱 적극적이고 끈질기게 설득해야 한다. 다행히 미국 정부에서도 조금씩 대화 쪽으로 다가서는 모습이 감지돼 기대를 갖게 한다. “북한이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기를 귀기울이고 있다”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중국, 일본과의 접촉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북한을 향해서도 북-미 대화를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이 없으면 정상회담이 쉽지 않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은 성과가 담보돼야 하며, 회담을 위한 회담은 할 수 없다”는 뜻을 거듭 밝혀왔다. 문 대통령의 ‘정상회담 속도 조절론’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북한은 어렵게 지펴낸 ‘평화의 불씨’를 되살리려면 북-미 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좀 더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정부가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대화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할 시기다. 필요하면 양쪽 이견을 조율해내고 간접 대화도 끌어내야 한다. ‘북-미 대화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 논의’라는 큰 방향성을 제시하며 국제사회의 중심을 잡는 ‘평화 내비게이터’ 역할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이렇게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국제적 여건을 차근차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반도 운전자’로서의 문 대통령의 위상도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평창 동계올림픽 메인프레스센터에서 내외신 기자들과 만나 남북 정상회담을 두고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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