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합의로 보편요금제를 도입함으로써 이동통신 소비자들의 요금 부담을 줄여보려던 노력이 사실상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됐다.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에서 이동통신 회사들은 보편요금제 도입을 거부했다. 통신요금 인하 필요성까지 부인하고 나섰다. 지난해 정부 출범 직후, 기본료 폐지를 비롯한 통신요금 인하 방안을 놓고 정부와 통신업계가 줄다리기를 하던 때와 비슷한 상황이 됐다. 이번에도 정부가 통신사들의 ‘배째라’식 대처에 등을 보인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통신요금 부담 완화 공약은 허공에 뜨게 된다. 정부는 공언한 대로 보편요금제 입법을 추진하여 약속을 지켜야 한다.
우리나라 통신요금이 외국보다 저렴하다는 통신사들의 주장은 어이가 없다. 통신 3사가 짬짜미라도 한 듯 똑같이 3만2800원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최저가요금제는 데이터 제공량이 300메가바이트(MB)에 불과하다. 이탈리아의 경우 비슷한 요금에 10기가바이트(GB)를 제공하고, 네덜란드는 3만원이 안 되는 가격에 4기가바이트를 쓸 수 있게 한다. 데이터 이용이 통신 서비스의 핵심이 돼가는 시대에 우리나라 통신사들은 요금제를 교묘하게 설계해 소비자들이 비싼 요금제에 가입하도록 사실상 강제하고 있다. 지난해 4월 현재 데이터 중심 요금제 가입자 가운데 6만원대 이상 요금제를 쓰는 사람의 비율이 42.3%에 이르는 형편이다. 더 낮은 요금으로 좀 더 많은 데이터를 쓸 수 있게 요금제를 다양하게 내놓으라는 것이 소비자와 시민단체의 요구다.
정부가 예시한 보편요금제는 ‘월 2만원에 음성 200분, 데이터 1기가바이트’를 제공하는 것이다. 영국의 통신사가 같은 가격에 2기가바이트를 제공하는 것에 견줘 데이터 제공량이 절반에 불과하다. 보편적인 이동통신 접근권을 실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더라도 통신사들이 비슷한 요금제를 내놓는다면 법으로 보편요금제를 강제할 필요까지는 없을 터이다. 그런데 통신사들은 이마저 거부한다. 규제개혁위원회와 국회 입법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정부가 예시한 요금제보다 더 유리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헛된 기대가 되도록 정부는 이동통신 접근권을 제대로 살리는 보편요금제를 다시 설계하기 바란다. 소비자들은 국회가 법을 통과시키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